한국거래소가 코스피200지수 내 특정 종목의 시가총액이 전체의 3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한 ‘시총 상한제(캡)’를 3월부터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조기 적용하기로 하면서 증권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 등에서 대규모 삼성전자 물량이 쏟아져 시장 충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거래소 측은 연초 삼성전자 주가의 고공행진으로 코스피200 내 비중이 일찌감치 30%를 넘어서면서 이대로 두면 증시 쏠림현상이 과도해질 것이란 점을 배경으로 내세웠다. 이 때문에 정기 조정 시기인 6월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이미 코스피200 내 시총 비중이 30%를 넘어섰고 올 들어 주가가 12%가량 급등(지난 20일 기준)하면서 다른 종목과의 격차를 계속 벌려나가고 있다. 20일 현재 코스피200 지수 시총(878조2324억6400만원) 가운데 삼성전자의 시총(294조2864억100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33.51%에 달한다.
삼성전자 '시총 상한제'에…"ETF發 1조 매물 쏟아질 것"
“삼성전자 매도 물량 1조원 풀릴 수도”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21일 “코스피200은 코스피100이나 코스피50과 달리 ETF 등 연계 자금이 많다 보니 자산운용업계에서도 30%를 초과하는 물량을 매입하는 데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가급적 시장 영향이 크지 않게 선물·옵션 만기일과 맞춰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물·옵션 만기일에는 프로그램 매매 물량이 급증하는 등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에 다음 거래일부터 시총 캡을 적용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시총 캡을 조기 적용하겠다는 한국거래소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이 같은 조치가 오히려 시장만 인위적으로 교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번 조기 시총 캡 적용으로 ETF 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매각해야 할 삼성전자 물량이 최대 1조원가량 될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현재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ETF 운용자금은 2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현재 초과분인 3.5%를 한 번에 해소하려면 7500억~1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매도 물량이 갑자기 시중에 풀릴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ETF를 운용하고 있는 한 대형 자산운용사 임원은 “최근 삼성전자를 매수한 자금을 살펴보면 ETF와 같은 패시브보다 액티브 펀드가 훨씬 더 많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거래소가 오히려 ETF의 발목을 잡는 시총 캡을 조기 적용하겠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처사”라고 말했다. 또 다른 ETF 운용사 관계자도 “6월까지 삼성전자가 지금과 같은 강세를 유지할 거라고 보는 근거가 대체 어디 있느냐”며 “시장의 선택에 따른 비중 확대를 인위적으로 규제한다면 펀드 투자자로서는 수익률 감소와 거래비용 증가 등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거래소의 지수 독점이 문제”

한국거래소의 지수 독점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미국 영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복수의 민간 지수 사업자가 다양한 지수를 개발,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지수가 시총 캡을 적용하더라도 다른 대안이 충분한 상황”이라며 “반면 국내 시장에서는 한국거래소가 지수 사업을 독점하는 체제다 보니 규제에 따른 충격이 고스란히 시장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는 “시총 캡 논란은 삼성전자 외에 살 주식이 없는 국내 증시의 구조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정부가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기보다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꿔 삼성전자 외에도 살 만한 기업들을 꾸준히 배출하도록 하는 게 훨씬 생산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호기/임근호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