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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에 억류됐다가 추방됐던 호주인 북한 유학생 알렉 시글리(30)가 '월간 북한'에 기고한 글에서 평양 유학생의 신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2018년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조선문학 석사 과정을 밟던 그는 미국 언론에 북한 관련 자료를 넘겨준 혐의로 지난해 체포됐다가 9일 만에 석방됐다.
석방 직후 북한은 시글리가 간첩행위 했다고 비난했고, 시글리는 이를 부인하며 북한에서의 경험을 함구했다.
반년간의 침묵을 깨고 공개한 이번 기고문에서 시글리는 자신을 "북한 오타쿠"라고 정의하며 평양에서의 유학 생활을 풀어냈다.
영국계 호주인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연스레 아시아에 흥미를 갖고 일본, 한국, 중국에서 유학하다 김일성종합대학까지 진학했다.
시글리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주민들과 외국인의 접촉을 '사상적 침투'라고 생각해 외국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하지만 유학생들은 시내를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관광객이 못 가는 수많은 장소에 갈 수 있다.
외교관들과 비정부기관 직원들이 평양 문수동에 있는 외교단이라는 특별 지역에서 사는 반면, 유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 근처 유학생 숙소에서 산다고 한다.
북한 학생이 감시자이자 룸메이트로 함께 지낸다.
다만, 유학생들이 북한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는 건 아니다.
같은 교실도 쓰지 않는다.
유학생들은 다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북한 주민 집에 방문하지 못하며, 그들에게 전화도 걸지 못한다.
외국인을 위한 별도의 고려링크 전화번호 시스템이 있어서 외국인들끼리만 전화를 걸 수 있다고 한다.
시글리는 "북한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서는 유학생들이 제일 많은 특권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도 있다"면서도 "어쨌든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유학생들은 아무래도 극단적인 외국인 혐오증을 앓고 있는 북한 체제 속에 자리 잡은 이방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당국에 체포됐던 과정은 비교적 짧게 짚고 넘어갔다.
북한 당국이 반성문 작성을 강제했다고 쓰긴 했지만, 노골적으로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은 담지 않았다.
그는 "나는 2019년 6월 25일 김일성종합대학 근처의 유학생 숙소에서 납치되어 북한의 비밀경찰 조직인 국가보위성으로 추정되는 조직이 운영하는 심문시설에서 9일간의 조사 과정을 밟았다"며 "내 입장에서 나는 무죄였지만 당국에 의해 무고(誣告)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시글리는 그런데도 가끔 북한 주민들이 건네는 친절과 도움은 유학생 생활의 가장 행복하고 뜻깊은 순간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매체에 북한 유학기 연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