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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열 쓰러지고 만화동아리 동료들이 남긴 분노와 슬픔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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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만화사랑', 1987∼1996년 '날적이' 기념사업회에 기증
    "당시 대학생들 고민 녹아있어…학생운동 역사 연구에도 중요 자료"
    이한열 쓰러지고 만화동아리 동료들이 남긴 분노와 슬픔의 일기
    "20년 후 삶의 덩이로 혁이(이한열이 동아리 활동 당시 불린 별명)가 우리에게 밀려들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지…."
    "반드시, 꼭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봐야만 한다.

    민주와 자주와 혁이를."
    1987년 6월 9일 군사정권 규탄시위에 참여한 연세대생 고(故)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진 후, 그가 활동한 학내 동아리 '만화사랑'의 날적이(공동 일기장)에 적힌 글들이다.

    이한열 쓰러지고 만화동아리 동료들이 남긴 분노와 슬픔의 일기
    12일 이한열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만화사랑'은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약 10년간의 동아리 '날적이' 30여권을 최근 이한열기념관에 기증했다.

    '날적이'란 1980∼90년대 대학가 동아리방에 오가는 학생들이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적고 나누는 공용 일기장을 가리킨다.

    만화사랑 회장 임재우(20)씨는 "그동안 날적이를 계속 동아리방에 보관해오고 있었는데, 공간이 부족해 기증할 곳을 찾던 중 기념사업회에 연락하게 됐다"며 "이한열 열사와 만화사랑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고, 6월 항쟁에 관해서도 자세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한열 쓰러지고 만화동아리 동료들이 남긴 분노와 슬픔의 일기
    기증된 날적이에는 '혁이'의 비극을 목격한 동아리 동료들의 슬픔과 시국에 대한 분노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쓰러진 지 이틀 후인 1987년 6월 11일 한 학생은 "이 땅이 왜 수많은 젊은 가슴을 피로 물들게 하는지, 왜 우리는 슬퍼하고 통곡하는 많은 어머니를 가져야만 하는지"라며 "(이한열이) 지금이라도 당장 저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설 것만 같은데, 지금은 볼 수조차 없다니"라고 썼다.

    6월 16일자 날적이에는 "슬프다.

    하지만 웃자. 기쁨의 그 날을 위해. 혁이 형은 살 거다.

    꼭 그럴 거다.

    웃으며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거다"라는 간절한 희망을 담은 글이 적혔다.

    이한열 열사가 끝내 숨을 거둔지 일주일 뒤인 1987년 7월 12일에는 "혁이 형의 장례도 다 끝났다.

    어제 삼우제를 지내고 이제 49재를 기다린다.

    혁이 형의 일이 작게, 아주 작게 내 마음속에 남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라며 누군가가 애써 담담하게 심경을 밝힌 글이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은 "우린 자꾸만 그가 좋아하던 것들을 끄집어낸다.

    진주난봉가, 웨하스, 그 애의 말투들", "기획부장은 이제 누굴까.

    누가 대자보를 쓰고, 누가 기획일지를 꼼꼼하게 챙길까"라고 그리움을 드러냈다.

    이한열 쓰러지고 만화동아리 동료들이 남긴 분노와 슬픔의 일기
    7월 18일에는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혁이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드디어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마 전 모라는 놈이 보았어도 웃지는 못했을 거야. 그리고 결심을 했지. 어머니 노래의 가사처럼 사람 사는 세상에 살기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야 된다고"라며 각오를 다지는 글도 적혔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날적이 내용 중에는 1987년 3월 21일 이 열사 본인이 동아리 행사를 준비하면서 느낀 점들을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있다.

    필적 등을 고려할 때 이한열이 쓴 글일 개연성이 크지만 아직은 추가 확인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한열 쓰러지고 만화동아리 동료들이 남긴 분노와 슬픔의 일기
    이경란 이한열기념관 관장은 "일기 양이 많고, 대부분이 익명으로 쓰여 분석하는 데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다"며 "이한열의 동기와 선·후배를 초청해 함께 읽어 보면서 누가 어떤 내용을 썼는지 알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대학생들의 고민과 캠퍼스 문화가 그대로 녹아 있다"며 "1987년 6월 항쟁부터 1996년 '연세대 사태'로 이어지는 학생운동 역사를 연구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념사업회는 기증받은 날적이에 보존 작업을 하고 내용을 스캔한 뒤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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