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서울 광진구에 사는 유이제(가명)씨가 보내주신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

'참 좁다.

'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전철을 타고 직장이 있는 광화문역으로 출근하는 유이제(가명·59)씨는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옆에 앉은 승객이 숨을 쉴 때마다 떠밀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비좁은 좌석 때문이다.

유씨는 1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키 165㎝로 체구가 작은 편인 나도 앉아갈 때마다 고역인데 덩치 큰 승객들은 오죽하겠느냐"며 "겨울철에는 외투도 두꺼워져서 더 불편함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는 "멀리서 우리나라를 찾은 손님인 외국인 관광객들이 (좁은 좌석에 웅크려서)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미안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OK!제보] 지하철 승객들 체구 커졌지만 좌석 크기는 30여년째 '제자리'
승객의 체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지하철 좌석 크기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상에서는 비좁은 좌석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음 카페 '도탁스'의 회원인 '후루***'은 "남자가 앉기에는 지하철 좌석은 너무 좁다"라며 "어깨를 접거나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앉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트위터 아이디 'kkak****'은 "누가 앉아도 좁은 지하철 좌석에서 몸을 움츠리는 등 서로 배려해야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패딩점퍼나 코트 등 입고 있는 옷이 늘어나는 겨울철에는 더하다.

커뮤니티 아이디 '화관****"은 "패딩점퍼를 입은 덩치 큰 남성끼리 앉아갈 때는 지그재그로 한명씩 앞으로 숙이고 가는 수밖에 없다"며 "선반이 없어져 웃옷을 벗어 따로 둘 데도 없다"고 말했다.

의도치 않은 '민폐'로 아예 자리 앉기를 포기하는 이도 있다.

인천지하철 1호선 부평구청역에서 만난 최진석(29)씨는 "키 180㎝에 체중 100kg이 넘는 거구라서 지하철 좌석에 앉을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라며 "이제는 빈자리가 생겨도 그냥 서서 가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 관계자는 "좌석이 좁다는 민원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면서도 "좌석에 나란히 앉은 승객 간에 (자신의 자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툼이 생겼다는 신고는 종종 접수되고는 한다"고 전했다.

지하철 좌석에 대한 승객 불만이 커지는 것은 한국인의 체격이 커지는 추이를 좌석이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기술표준원이 조사한 한국인 인체치수조사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덩치는 조사 때마다 꾸준히 커졌다.

30~34세 남성의 평균 허리둘레는 1979년 75.9㎝에서 2015년 85.6㎝로 9.7㎝가 커졌고, 같은 나이대의 여성은 70.1㎝에서 75.0㎝로 4.9㎝ 늘었다.

평균 키는 같은 나이대의 남성이 1979년 166.1㎝에서 2015년 173.7㎝로 7.6㎝ 늘었고, 여성 역시 160.2㎝로 6.5㎝ 커졌다.

반면에 지하철 좌석 크기는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과거 체형에 맞춰 제작된 폭 435㎜의 좌석은 여전히 대부분 전철에서 쓰이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 4∼6, 8호선에 운행 중인 모든 전철은 이 크기의 좌석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부터는 2∼3, 7호선에 한해 기존보다 불과 15㎜가 커진 450㎜ 크기의 좌석을 갖춘 전동차를 일부 도입했다.

2017년 들어서는 기존 1열당 7인석에서 6인석으로 좌석 수를 줄이는 대신, 개당 크기를 480㎜로 늘린 전동차가 2호선에 한해 도입됐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기존 노후 전동차 1천900량을 2024년까지 넓어진 좌석을 갖춘 새 전동차로 교체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OK!제보] 지하철 승객들 체구 커졌지만 좌석 크기는 30여년째 '제자리'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동차 공간의 한계 탓에 좌석의 크기를 마냥 키우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기민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애당초 우리나라 도시 철도가 대량의 인원 수송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좌석 편의성보다는 입석 승객 기준으로 차량을 설계했다"라며 "실제로 전 세계 대도시와 비교해도 우리 수도권 전철의 혼잡도는 높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1인당 좌석 크기를 늘리거나 좌석을 추가로 설치한다면 지금보다 승객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다.

결국 배차 시간을 좁히는 것까지 내다봐야 한다"며 "굳이 좌석의 편의성을 높이려면 승객이 상대적으로 적은 노선 위주로 시작하는 게 현실적으로 맞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 관계자는 "최신형 전동차에 갖춰진 1열당 6석이 현실적인 타협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라며 "여기서 개별 좌석의 크기를 늘린다면 5석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럴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승객 수가 너무 적어진다는 우려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사문의나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