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도 '정명훈과 서울시향' 사운드는 여전히 빛났다.
풍부하고 윤기 흐르는 음색, 노래하듯 서정적인 연주 스타일,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아가는 극적인 해석.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물론 정명훈과 서울시향에 보내는 청중의 열띤 반응 역시 그대로였다.
지난 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선 지휘자 정명훈은 마치 고향에 다시 돌아온 듯 서울시향과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췄다.
4년 만의 만남이지만 그간의 세월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랜 세월 늘 함께한 듯 둘은 한 몸처럼 일사불란한 합주를 선보이며 깊은 감동을 전했다.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음악회는 '2020 신년음악회'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지휘자 정명훈을 비롯한 한국 대표 음악가가 출연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공연 전부터 세종문화회관 로비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객석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공연 전반부에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서울시향과 협연한 클라라 주미 강은 첫 음부터 초점 있는 음색으로 귀를 사로잡았다.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바이올리니스트 연주가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더블베이스 편성을 교향곡의 반으로 줄였고 협연자 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부드럽게 음색을 조절했다.
덕분에 클라라 주미 강과 서울시향 협연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웠고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량과 표현력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했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은 노래하는 서정성과 화려한 기교에 이르기까지 바이올리니스트의 여러 가지 개성을 보여 줘야 하는 쉽지 않은 곡이지만, 클라라 주미 강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특히 난도가 높은 3악장에서도 힘차고 당당한 연주를 선보여 감탄을 자아냈다.
공연 후반부,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가 시작되자 그 조합으로만 가능한 특유의 소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현악 주자들은 정명훈 예술감독 시절의 스타일로 되돌아가, 음과 음 사이를 긴밀하게 연결해내는 연주법으로 윤기 흐르는 음색을 만들어냈다.
또한 목관악기군은 악보에 적힌 편성보다 두 배 연주자가 투입되어 묵직하면서도 진중한 소리로 브람스 음악을 잘 드러냈고, 트롬본을 비롯한 금관악기 주자들이 중요한 선율을 연주할 때면 마치 벨칸토 오페라 가수가 된 듯 노래하는 듯한 연주로 깊은 감흥을 전해주었다.
오페라 지휘자로서 탁월한 정명훈은 브람스 교향곡을 마치 오페라처럼 드라마틱하게 표현해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부분에서 연주 속도를 약간 늦추거나 가속해 선율 맛을 살려내는 그의 지휘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즉각 반영되면서 교향곡을 더욱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해냈다.
특히 4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급격히 가속함으로써 폭발적인 종결부를 끌어내 박수갈채를 받았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객석 곳곳에서 '브라보' 환호가 터져 나왔고 열띤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을 앙코르로 연주해 청중의 환호에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