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심 씨, 지하철서 헤맬 때 도와준 아내와 결혼 12년째
"고향 생각도 나지만 아내·친구 있으니…한국서 죽을 때까지 살 것"

"처음에는 아내와 같이 걸어갈 때 한국 사람들의 시선이 매우 불편했는데, 이제는 편안해졌어요"
[우리곁의 이주민] ③ 파키스탄 결혼이민자 "한국인 시선 이젠 편해져"
파키스탄 라호르 출신 결혼이민자 모하메드 카심(39) 씨.
한국에 온 지 15년이 된 데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 12년째로, 영주권이 있는 카심 씨는 여느 외국인과 달리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카심 씨가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04년 5월.
그는 "당시 파키스탄이 테러 등으로 사회가 불안한 상황에서 친구가 한국에 연수생 비자 신청을 하러 간다기에 같이 신청해 얼떨결에 한국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코리안 드림'이란 말도 몰랐고, 파키스탄에서 시외버스 사업을 하던 대우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만 알았어요"
한국에 처음 입국해 경기 파주에 있는 한 엘리베이터 제조회사에 들어가 용접 일을 배웠다.

1년 전 옮긴 지금의 기계 제작회사에서도 용접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우리곁의 이주민] ③ 파키스탄 결혼이민자 "한국인 시선 이젠 편해져"
카심 씨가 아내를 만난 사연은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역곡역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구로역에서 길을 몰라 헤매다 지금의 아내에게 우연히 길을 물었어요.

(아내가) 친절하게 잘 안내해준 뒤 휴대전화 번호를 묻길래 가르쳐 줬지요"
역곡역에 도착할 때쯤 잘 도착했는지 묻는 아내의 문자메시지에 감동, 이후 1년 정도 만난 뒤 2007년 12월 결혼을 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 경찰이던 아내 오빠가 "비자만 받고 나면 도망간다.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하는 등 처가의 반대가 심해 카심 씨 친구 2명만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게 됐으며, 결혼 후 3년 동안 처가에는 가지도 못했다.

결혼 3년이 지나면서 신뢰가 생기면서 부부로 인정받고 가족 모임에도 오가는 등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고 있다고 카심 씨는 말했다.

며칠 전에는 전북 부안에 있는 처가에 김장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곁의 이주민] ③ 파키스탄 결혼이민자 "한국인 시선 이젠 편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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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파키스탄은 비슷한 점도 많다고 카심 씨는 말한다.

우선 부모 뿐만 아니라 윗사람을 공경하는 문화가 공통점이라고 했다.

파키스탄도 한국처럼 밥상에서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아랫사람이 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국간 문화 차이로 당황한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회식 자리에서 동료가 술을 따라 줬는데 무슬림 문화 영향으로 술잔을 받지 않았다가, 그것이 한국예절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카심 씨는 "5, 6년 전 아내와 영화를 보고 집에 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봐 나도 같이 봤더니 아내가 말리기도 했다"며 "요즘은 한국에 외국인이 많아져서 그런지 특별히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카심 씨는 "아직도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 이주민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고 이해해주는 것 같지 않다"고 서운한 마음도 내비쳤다.

[우리곁의 이주민] ③ 파키스탄 결혼이민자 "한국인 시선 이젠 편해져"
그는 "한국생활을 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음식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무슬림이기 때문에 먹으면 안되는 음식이 많은 데다, 그마저도 입에 맞는 음식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무조건 편하게 먹는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 중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하고 생김치·볶음밥·닭도리탕·닭갈비·동태탕·우럭탕·생선구이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현재 법무부 고양이민자통합센터(대표 김세영)에서 매주 일요일 6∼8시간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는 그는 "파키스탄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에 들어가 통역사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카심 씨는 "고향 생각이 많이 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들이 있는 한국에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