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란 핀켈 국가수석과학자 인터뷰
충전소 개수 등 '숫자' 집착 말고
산업 초기단계 정책 뒷받침 필요
1989년 호주 정부가 신설한 국가수석과학자 자리는 호주 산업자원부 소속으로 연방정부 총리 및 장관들에게 산업·에너지정책을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제8대 국가수석과학자인 핀켈 박사는 한국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회장 문재도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의 수소협력 세미나를 위해 최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핀켈 박사는 “수소는 경이로운(remarkable) 에너지”라며 “화석연료처럼 미세먼지나 온실가스를 배출할 염려가 없고,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와 달리 24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한다”고 말했다.
호주는 ‘수소선진국’으로 통한다. 지난해 말 ‘국가수소 로드맵’을 수립한 데 이어 올해 11월 말 ‘국가수소전략’을 발표하면서 적극적으로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핀켈 박사는 이 전략의 입안을 진두지휘했다. 2030년까지 △수소 관련 법률 등 안전기준 확립 △아시아의 3대 수소수출국 도약 △수소 원산지 증명제도 도입 등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핀켈 박사는 “수소 경제를 확산시키기에 앞서 우선 수소허브도시 몇 곳을 지정한 뒤 생산부터 운송, 가공을 거쳐 사용에 이르는 소규모 밸류체인을 실증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초기 단계인 수소 경제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단순 수치가 아니라 관련 산업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관련 법부터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핀켈 박사는 “수소산업에 대한 규칙이 없으면 기업의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며 “수소 경제법 등 관련 법이 갖춰지지 않은 채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축구선수들에게 룰이 정해지지 않은 경기장에서 뛰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수소 경제법은 20대 정기국회 마지막 날 통과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선진국들은 경쟁적으로 수소산업을 육성 중이다. 핀켈 박사는 “한국의 기술력과 호주의 풍부한 자원이 만나면 ‘윈윈(win-win)’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호주는 액화천연가스(LNG)·석탄을 통해 끈끈한 자원 파트너 관계를 이어왔고, 이제는 수소로 새로운 역사를 쓸 차례”라며 “언뜻 보면 호주가 한국에 자원을 일방적으로 판매한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한국 기업의 관련 기술과 투자가 있었기에 오랜 동료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