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타계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경영권 승계 준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부친인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1970년 2대 회장에 취임했던 본인의 경험 때문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주변에 “70세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리고 실제로 70세가 되던 1995년 2월 장남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 재계 첫 무고(無故) 승계였다.

구 명예회장과 마찬가지로 구본무 회장도 1975년부터 20년 동안 그룹 내 여러 현장을 두루 거치면서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변함없이 적용된 장자 승계 원칙과 혹독한 후계자 수업은 조용하면서도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의 비결이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멋진’ 은퇴보다는 ‘잘된’ 은퇴가 되기를 기대했다. 육상 계주에서 앞선 주자가 최선을 다해 달린 후 바통 터치를 하는 것처럼 최고 경영인으로서 25년을 달려왔으면 주자로서의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바통 터치가 이루어졌을 때 ‘잘됐다’는 표현이 어울리듯, 경영 승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임사를 끝으로 퇴임하는 원로 경영인들과 함께 임직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식장을 빠져 나간 것도 완전히 경영에서 손을 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자는 의도였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은퇴와 함께 창업 때부터 그룹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 등 원로 회장단들도 동반 은퇴했다. 새로 취임하는 구본무 회장과 젊은 경영진이 독자적으로 소신 있게 경영 활동을 펴도록 배려한 것이다. 25년 전 2대 회장 취임 때 만들어진 아름다운 경영권 승계라는 LG의 귀한 가치가 다시한번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은퇴 후 구자경 명예회장은 평소 갖고 있던 소박한 꿈이었던 분재와 난 가꾸기, 버섯 연구에 정성을 기울이는 등 회사생활 50년 만에 맞은 자유인의 삶을 자연 속에서 누려왔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