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2명 중 1명, 테러범 참석한 재소자 재활프로그램 진행 대학원생
사망자父 "아들은 약자의 편이었다…불필요한 구금의 구실로 이용되지 않기를"
시민들 희생자 추모하며 일상회복…"무슨 일이 벌어지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지난 29일 (현지시간) 대낮에 영국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으로 영국 사회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희생자의 사연과 목숨을 걸고 용의자를 제압한 용감한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이날 우스만 칸(28)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2명 중 1명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잭 메릿(25)으로 확인됐다고 영국 언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메릿은 전날 런던 브리지 북단 피시몽거스 홀에서 케임브리대학 범죄학과가 주최한 재소자 재활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변을 당했다.

칸의 테러로 메릿과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여성 1명이 숨졌으며, 3명이 다쳤다.

부상자 3명은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다.

중상을 입어 위험한 상태였던 1명은 고비를 넘겼고, 다른 2명도 안정적인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칸은 2010년 런던 증권거래소 폭탄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2012년 1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18년 12월 가석방됐다.

칸은 위치정보시스템(GPS)이 달린 전자발찌를 30년간 부착하고, 통금시간·인터넷 사용금지·만남 제약 등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풀려난 지 1년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칸이 지켜야 하는 가석방 조건 중에는 테러에 연루된 이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재활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항목도 있었다.

칸은 재소자 재활 프로그램을 듣던 중 건물 안에서 흉기를 휘둘렀고, 런던 브리지로 빠져나온 후 그를 말리려는 시민들과 몸싸움을 하다가 경찰에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칸이 가석방 기간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석방 제도에 대한 논란이 붙었다.

그러나 희생자 메릿의 아버지 데이비드는 "제 아들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는 아름다운 영혼이었다"며 "아들의 죽음이 더 가혹한 형벌이나 불필요하게 사람을 구금하는 구실로 이용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글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남겼다고 BBC 방송, UPI 통신 등이 전했다.

모조품으로 판명 나기는 했지만, 폭탄을 몸에 두르고 양손에 커다란 칼 두자루를 쥐고 있는 테러범에 맞서 싸운 시민들은 소화기와 피시몽거스 홀에 전시돼 있던 150㎝가 넘는 외뿔고래 이빨을 들고 달려들었다.

칸을 제압한 용감한 시민 중에는 2003년 21세 지적장애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2004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스탠퍼드 힐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제임스 포드(42)도 있어 놀라움을 안겨준다.

과거 포드가 수감돼 있던 그렌던 교도소와 함께 일했던 버밍엄 시티 대학의 데이비드 윌슨 교수는 언론 등에 공개된 사진 속에서 그를 알아봤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밝혔다.

범죄학을 전공하는 윌슨 교수는 포드가 그렌던 교도소에서 정신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았다며 포드의 사례는 재소자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여행 가이드 토머스 그레이(24)는 사건 당시 런던 브리지를 지나가다가 차에서 내려 칸을 발로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그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5∼6명이 용의자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고 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럭비를 배웠다는 그레이는 '한 선수는 팀 전체를 위해, 팀 전체는 한 선수를 위해 싸운다'는 럭비 정신을 언급하며 "런던 시민이라면 누구나 했을 일을 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트위터 등을 통해 공개된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담은 영상에서는 범인이 들고 있다 떨어뜨린기다란 칼을 집어들고 조용히 뒤로 물러서는 양복차림의 남성도 화제를 모았다.

이 남성은 경찰로 알려졌다.

또 외뿔고래 이빨을 집어들고 용의자를 쫓아갔던 남성이 폴란드 이민자라는 사살이 알려지면서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이 "영국 사회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사례"라며 감사를 표하는 등 이민자의 용감한 행동을 칭찬한 댓글이 이어졌다.

브렉시트를 앞두고 분열된 영국 사회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미담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성명을 통해 "목숨을 걸고 타인을 도운 용감한 시민들에 끝없는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자신들의 전사가 런던 브리지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영국 경찰은 칸이 공범 없이 단독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끔찍한 테러가 또다시 발생했지만, 시민들은 테러에 맞서는 가장 용감한 방법이 일상을 회복하는 것임을 다시금 보여줬다.

칼부림 테러가 발생한 다음 날 오전 일찍 런던 브리지를 찾아 처음으로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을 올려놓은 이들은 이슬람 성직자(이맘) 만수르 클라크와 사바 아흐메디였다.

클라크는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동을 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해 가장 먼저 꽃을 두러 왔다"고 말했고, 아흐메디는 "런던 시민들과 이슬람 공동체의 슬픔을 공유하고 싶어 왔다"고 전했다.

이들에 이어 희생자들을 추모하러 온 토니 피츠제럴드(50)는 자신을 아일랜드 출신이라 소개하며 북아일랜드 무장조직 아일랜드공화군(IRA) 때문에 아일랜드인을 욕해서는 안 되듯 이번 사건으로 무슬림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출입통제로 인적이 드문 런던 브리지와 달리 바로 옆에 있는 버로우 시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가 넘쳤다.

2년 전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테러를 경험했지만 그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런던 시민들의 의지가 읽혔다.

조슈아 엘리엇(22)은 "테러리스트가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더라도 내 삶에는 달라지는 게 없다"며 "무슨 일이 벌어지든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그래왔듯이 성당에 나가 성가대 활동을 할 계획이라는 나이절 케년(79)은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