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안전, 내가 지킨다"…유해물질 잡아내는 가스감지기 [배성재의 Fact-tory-4]
입력2019.11.29 16:07
수정2019.11.3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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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 직원들은 상장기업을 평가할 때마다 현장답사를 나갑니다. 기업의 본령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라면, 공장은 그 근간이기 때문이죠.
공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배성재의 Fact-tory는 공장을 직접 다녀보며 기업들의 기술과 경쟁력을 살펴봅니다. 공장(Factory) 속 뚜렷한 사실(Fact)과 땀 섞인 이야기(Story)를 동시에 전합니다.
[반도체 백혈병 분쟁과 가스감지기]
▲ 2018년 11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이 끝난 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황상기 반올림 대표, 김지형 조정위원장 및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른바 `반도체 백혈병 분쟁`을 공식 사과한 지도 지난 23일로 벌써 1년이 됐습니다. 책임 소재를 두고 반도체 근로자 인권단체 `반올림`과 11년을 끌어왔던 분쟁이 마침표를 찍은 순간이었죠. 이후엔 정부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년에 가까운 추적 조사를 통해 "반도체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여성근로자의 혈액암 발병 비율이 다른 근로자들보다 현저히 높다"고 밝히면서, 반도체 공정과 질병의 인과관계가 공식적으로 인정됐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모두 질병의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진 못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작업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원의 공식 입장이었습니다. 그만큼 반도체 제조 과정에는 다양한 고위험 화학물질들이 투입되기 때문에, 어떤 물질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 규명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포함됐던 고순도 불산 `에칭가스`도 고농도 독성화학물질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유해 물질을 빠르게 감지하고 미리 피하는 것이 반도체 생산 현장 안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감지할 `가스감지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인데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가스감지기는 일본·독일 등지에서 전량 수입해왔다고 합니다. Fact-tory가 네 번째로 다녀온 공장, 가스트론의 군포 본사공장이 만들기 전까지 말이죠. 가스트론은 현재 국내 산업용 가스감지기 시장의 73%를 점유 중인 중견기업입니다.
[Fact-]
위치: 경기도 군포시 군포첨단산업1로
부지 면적: 11,644.6 ㎡
인원: 208명
생산 제품: 산업용 가스경보기, 불꽃감지기, 경광등
◎ 첫인상 - 줄지어 기다리는 가스감지기들
사실 Fact-tory 취재 때마다 가장 큰 고민은 `그림이 될 만한 장면이 없으면 어쩌나`입니다. 공장은 글만으로는 분위기 전달이 쉽지 않아 영상이 중요하기 때문인데요. 가스트론 군포 본사공장은 그래서 고민이 가장 컸던 곳이었습니다. 가스감지기는 일반 소비자에게 친숙한 제품도 아니고, 반복적인 생산 공정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다행히(?) 공장은 제 예상보다 동적이었습니다. 총 5층인 본사 건물 안에는 센서 제조와 제품 검사 등의 시설이 있었는데요. 검사를 위해 100여개가 넘는 가스감지기들 일제히 깔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직원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2층 생산라인에 깔린 가스감지기들은 끝에서 봤을 때 반대편 끝이 겨우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곳의 1일 최대 생산량은 3,000개, 센서 이외의 기타 구성품들은 OEM을 통해 들여온다고 합니다.
◎ 제품 - 센서와 가스감지기
가스트론의 제품은 크게 센서와 가스감지기로 볼 수 있습니다. 센서는 가스감지기의 핵심 부품인데요.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목적으로 설치되는 제품인 만큼, 목적에 따라 저마다의 감지 센서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이에 알맞게 센서를 제작하는 방식이 곧 기술력인 셈이죠.
센서 안에는 백금이나 금으로 만든 전극과 전액을 넣는데요. 이들이 특정 물질과 닿게 되면 산화반응이 일어나고, 이때 생긴 전자가 회로기판에 전달되면서 감지기가 울리게 되는 원리입니다. 센서에 전극을 쌓고 전액을 바르는 과정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은 보안이 필요한 기술로 분류되어 촬영도 불가능했습니다. 또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일부 센서는 여전히 일본과 유럽권에서 수입 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든 센서는 가스감지기에 장착되게 됩니다. 가스감지기는 그 역사가 100년 가까이 되는 발명품인데요. 크게 가연성(폭발) 감지기, 독성 감지기, 산소 감지기로 나눌 수 있고, 가스트론은 세 종류 모두를 만들고 있습니다. 가스를 감지하는 방식도 점차 발전하고 있는데요. 예전엔 외부 공기를 흡입해 태우는 방식으로 가스를 감지했다면, 최근엔 적외선 방식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공기 중에 빛을 투과해 그 굴절율에 따라 가스를 감지하는 방식이죠. 기존 방식보다 수명도 더 길기 때문에 점차 대세도 적외선 방식의 가스 감지기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 제품분석 - 더 많이, 더 빨리, 더 정확히
앞서 말했듯 가스트론 가스감지기의 국내 점유율은 이미 70%가 넘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에 더해 정유·화학공장, 발전소, 터널 등에 가스트론의 장비가 설치 되어있는 셈입니다. 경쟁사로는 일본의 세계적인 가스감지기 기업 리켄 케이키(Riken Keiki), 미국의 다국적 복합기업 허니웰(Honeywell) 등이 있는데요. 국내 가스감지기가 개발된 후로 이들로부터의 수입량도 급격히 떨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가스트론과 삼성전자가 협력해 `세계 최초`를 달성한 일도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멀티 가스감지기, `GTM 시리즈`가 바로 그것인데요. 반도체 분야는 가스와 냉매, 알콜 등을 많이 사용하다보니, 선별이 필요한 가스마다 가스감지기를 설치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를 모두 설치하자니 공간적인 제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요. 이러한 고민 끝에 결국 여러가지를 동시에 감지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한 겁니다.
멀티 가스감지기의 핵심 기술은 `간섭 영향`을 최소화 하는 겁니다. 간섭 영향이란 쉽게 말해, 가스감지기가 A 가스를 B 가스로 착각하고 경보를 울리는 것을 일컫는데요. 공동연구 끝에 양사는 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고, 이후 일본의 리켄 케이키(Riken Keiki)도 이와 비슷한 제품을 내놓는 등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위험 물질 하나를 선별해내면 그만이었던 가스감지기가 이젠 위험 물질을 더 많이, 더 빨리, 더 정확히 잡는 능력이 중요해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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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포에 있는 공장이다
가스트론 본사의 위치는 공장이 있기엔 제법 `생뚱맞은` 곳에 있습니다. 바로 경기도 군포시인데요. 현장에 도착해보니 군포가 공장들이 거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가스트론은 군포시가 2007년부터 운영 중인 군포첨단산업단지임에 입주해있었습니다.
최동진 가스트론 대표는 군포에 자리를 잡은 이유에 대해 "군포첨단사업단지가 수도권과 가깝고 인력 수급도 쉬웠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스감지기는 설치와 사후 관리가 중요한 만큼 젊은 인력의 수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죠. 그동안 경기도 의왕시와 안산시 등을 거쳐 2년 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공장, 연구소, 영업부서들을 한데 모아 군포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덕분에 점심 사내식당에는 관리직부터 영업직, 생산부서 직원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모습도 연출됐습니다.
◎ 직원 평균 연령이 32세인 공장이다
공장의 첫인상에 대해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직원들이 정말 젊다는 점이었는데요.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무려 32세, 이제 막 학교을 졸업한 듯한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최동진 대표의 의도대로 현재 군포나 수원 쪽 청년들이 많이 채용됐다고도 합니다. 가스트론은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청년 친화 강소기업` 중 하나기도 합니다.
젊은 사원들이 많다보니 고용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엿보였습니다. 최동진 대표는 영업이나 수리를 맡고 있는 직원들도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고도화 작업을 배울 수 있는 R&D 파트 등으로 배치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전 직원이 동남아 등지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홍보팀 직원분의 깨알 자랑은 솔직히 좀 부러웠습니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대 고객사인 공장이다
최동진 대표는 가스 불꽃 감지기를 수입해 파는 일로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놨다고 합니다. LG전자 개발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이걸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1992년에 사업을 시작했다고요. 첫 2년 동안은 수익이 아예 없었습니다. 당시 직원들의 월급도 주지 못할 만큼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끝내 감지기를 개발했지만 인증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안전제품인 만큼 실사용 사례나 정부 인증이 없으면 기업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수출을 하자니 국가 별 안전 인증도 비싼데다 요구 스펙도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사업을 접을 위기까지 갔지만 사업 3년 만인 1995년, 울산석유화학단지 내에 있던 동서석유화학에 처음으로 납품을 시작하며 지금까지 온 것이죠.
현재 가스트론의 가장 큰 고객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입니다. 때로는 이 자체가 인증이 된다고도 합니다. 2년씩 걸리던 기업·정부 인증도 이젠 가스트론이라는 이름 덕분에 3~6개월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경기도 의왕시 임대공장에서 시작한 기업은 이제 매출 870억(2018년 기준)의 중견기업이 되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전량 수입하던 가스감지기를 국산화 해낸 공장, 가스트론 본사 군포공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