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잘못된 경영 개입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되거나 주가가 떨어져 기업 또는 해당 기업 소액주주가 손실을 입으면 그 손해는 누가 배상하는 겁니까.”

한 상장회사 임원의 토로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목적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지침)’은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개입할 여지를 대폭 확대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구제받을 길이 없는 데 따른 하소연이다.

잘못된 경영개입으로 기업 손실 입어도…구제 수단은 '全無'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 기업이 올 1분기 말 285개에서 2분기 302개, 3분기 313개로 불어나면서 기업에 대한 영향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지침은 물론 국민연금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그 어디에도 국민연금의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 규정은 없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과 산하 전문위원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 손해배상책임 의무를 지우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설령 통과되더라도 해당 위원이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했을 때만 처벌하겠다는 내용이어서 국민연금의 잘못된 주주권 행사로 인한 책임 조치와는 거리가 멀다.

한 로펌의 지배구조 전문 변호사는 “국민연금이 제안한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면 법적 정당성이 있건 없건 ‘주주 다수의 결정’이 되기 때문에 해당 기업은 따라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 불안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 등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현행 법 체계에서는 기업이 구제받을 수단이 없다”는 설명이다.

곽관훈 선문대 경찰행정법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에 앞서 어떤 방식으로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내 주식 운용을 100% 위탁하고, 원칙을 위반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산운용 전문성과 독립성이 떨어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가 기업 경영 관련 주주권 행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금운용위는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 차관 5명 등 정부 인사 6명에 사용자 대표(3명), 근로자 대표(3명), 지역가입자 대표(6명), 전문가 2명으로 구성돼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