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과 피아노협주곡 2번 협연 리뷰

23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니콜라이 루간스키(47)는 손가락을 건반에서 너무도 가볍게 움직였다.

유영하는 그의 손가락 주변에선 공기마저 흐르지 않는 듯했다.

공기 저항을 뚫고 솟아나는 음들은 콘서트가 진행될수록 중첩하며 단단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특히 1악장 말미에 등장하는 카덴차는 압권이었다.

폭풍우 치듯 휘몰아치는 격정적인 피아노는 절정으로 치달은 후 순식간에 적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거대한 폭풍 후의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 '초절기교' 속에 섬세한 감수성을 잇달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원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2번은 워낙 난곡이어서 콘서트장에서 잘 연주되지 않는 작품이다.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했을 때도 '연주가 불가능한 음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고 한다.

연주자들은 손사래를 쳤고, 평론가들은 외면했다.

지난 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사사한 러시아 출신 루간스키에게도 이 곡은 분명 도전적인 과제였다.

대단한 테크니션인 그가 27세 때 처음으로 이 곡을 연주했을 정도라고 하니까 말이다.

이날 루간스키는 프로코피예프를 그만의 방식으로 연주했다.

타건이 강하진 않았지만, 그의 경쾌하면서도 부드러운 프로코피예프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1악장뿐 아니라 마지막 악장 피날레에서도 그는 음악의 중심을 잡으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다른 협주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2악장에서는 쾌속정을 몰 듯, 빠르게 질주해 나갔다.

라벨을 연주하듯 루간스키의 프로코피예프는 경쾌하고, 섬세했으며 분위기까지 있었지만 결코 가벼움만으로 끝나지 않는 소리의 단단함도 있었다.

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가 이끄는 시향과의 호흡도 무난했다.

이어진 서울시향의 쇼스타코비치 5번 교향곡도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5번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가운데 7번 '레닌그라드'와 함께 가장 잘 알려진 그의 대표곡 중 하나다.

스탈린이 자행한 '대숙청' 공포에서 만든 곡이어서 그런지, 곡을 듣고 있으면 쇼스타코비치가 모든 역량을 끄집어내 작곡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보레이코가 이끄는 서울시향 연주는 약간 매끄럽지 않은 구석도 있었다.

일부 연주자가 연주 중 긴장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해 전반적인 연주 완성도는 원래 시향의 실력에 견줘 조금 떨어지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능력을 극대화해 편성한 광대한 사운드, 천둥 같은 타악기 소리와 거침없이 질주하는 현악기의 당당함, 그런 광폭함 속에서 순식간에 찰랑찰랑 수면을 유영하는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영롱한 소리, 여기에 러시아 출신 보레이코가 전달하는 러시아적 감수성의 깊이는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할 것 같다.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 러시아 현대 음악가들의 음악만으로 꾸민 흔치 않은 연주회다.

서울시향과 루간스키는 23일과 같은 레퍼토리로 24일 한 차례 더 연주한다.

관람료 1만~7만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