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 /사진=연합뉴스
그룹 방탄소년단 /사진=연합뉴스
'그래미 어워즈'의 벽은 역시 높았다. 내년 시상식을 앞두고 세계적인 그룹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방탄소년단을 단 한 개의 후보에도 올리지 않았다. 세계 각국을 돌며 한국어로 노래를 부른 이들이었지만 그래미는 결국 K팝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미국레코드예술과학아카데미(NARAS)는 20일(현지시간) '제62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 84개 부문 후보 명단을 공개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부터 신인상(The Best new artist),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후보 지명이 예상됐지만 끝내 명단에 이름이 오르지 못했다.

올해 방탄소년단이 거둔 성과에 비추어 볼 때 심히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4월 발매한 '맵 오브 더 솔 : 페르소나(Map of the soul : Persona)'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정상을 차지했다. 발매 당시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는 300명이 넘는 국내외 취재진들이 몰렸다. 외신 역시 방탄소년단을 향한 뜨거운 취재 열기를 보였다. 그리고 발매 7개월 가량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에서 역주행을 이끌어내며 글로벌한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서울 파이널 콘서트를 찾은 해외팬들 /사진=연합뉴스
방탄소년단 서울 파이널 콘서트를 찾은 해외팬들 /사진=연합뉴스
1년 2개월에 걸쳐 진행한 월드투어로도 역사적인 기록을 쏟아낸 방탄소년단이었다.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로 한국, 미국,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태국,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 전 세계 23개 도시에서 62회의 공연으로 무려 206만 여명에 이르는 관객을 동원했다. 빌보드가 공개한 박스스코어 집계에 따르면 이 투어는 97만6283장의 티켓을 팔아 1억1660만 달러(약 1362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는 10월 한 달간 세계 2위에 달하는 기록이었다. 방탄소년단의 경제적 효과는 이미 5조억 원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래미 어워즈 후보가 공개되자 롤링스톤, LA타임즈, 포브스, CNN 등 외신들은 일제히 방탄소년단의 후보 지명 제외를 조명했다.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그래미는 언제나 그렇듯 시대에 뒤쳐져 있다"며 "K팝은 이제 미국에서 인기 있는 장르가 됐다. 그래미가 K팝을 인정하지 않는 건 현 음악시장과 대조적인 행보다"라고 꼬집었다. LA타임즈도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명)들의 반응을 실으며 "세상 사람 대부분은 비틀즈가 얼마나 많은 그래미 트로피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그들의 음악을 알 뿐이다. 방탄소년단도 마찬가지다"라고 위로를 전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그래미의 인종차별은 비밀이 아니다. 61년의 역사 속에서 10명의 흑인 예술가만이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고,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르 카테고리로 분류됐다. 그래미는 주관적이며 산업의 정치와 포퓰리즘에 움직이는 구식"이라고 비판했으며, CNN은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리스트에 하나도 들지 못했다. 아미들이 트위터로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탄소년단의 앨범 수록곡이 7개로 그래미 후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일각의 주장도 크게 설득력을 갖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롤링스톤은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던 릴 나스 엑스의 데뷔 앨범도 역시 7곡이었다"라고 짚었다.
방탄소년단 /사진=연합뉴스
방탄소년단 /사진=연합뉴스
이번 '그래미 어워드'에서 릴 나스 엑스는 '베스트 신인 아티스트(Best New Artist)',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베스트 랩/송 퍼포먼스(Best Rap song performance)', '베스트 뮤직비디오(Best MusicVideo)'까지 무려 여섯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무명 래퍼였던 릴 나스 엑스는 '괴물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현재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올랐는데, 그 역시 RM에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해 협업곡을 발표하는 등 방탄소년단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그래미가 방탄소년단을 놓쳤다. 비영어권 아티스트에 인색한 대표적 보수 성향의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는 지난 제61회에서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와 화제를 모았다. 미국의 래퍼 차일디시 감비노에게 주요 부문 상을 몰아주는가 하면, 여성 아티스트 및 흑인, 라틴계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대폭 확대했다. 불참을 선언했던 드레이크가 기존의 입장을 깨고 참석했으며,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방탄소년단을 초대했다. 방탄소년단은 수상이 아닌 시상자로 나섰지만 그럼에도 콧대 높은 그래미의 무대를 밟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그래미로서는 의미 있는 변화였다. 이후로도 '그래미 어워즈'를 주최하는 레코드예술과학아카데미는 올해의 회원으로 방탄소년단과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를 선정하는가 하면, '그래미 뮤지엄'에 방탄소년단이 시상자로 참석했을 당시 입었던 슈트를 전시하는 등 꾸준한 접점을 만들었다. 이에 자연스럽게 '제62회 그래미 어워즈'에 방탄소년단이 후보로 오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래미 어워즈'는 스스로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며 기존의 편협했던 틀을 점진적으로 깨는가 싶었으나 그 이상의 도약을 일궈내지는 못한 셈이다. 아집과 비판 여론 속에서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을 선택한 그래미의 판단에 아쉬움이 남는다.

방시혁 대표는 지난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감사하게도 방탄소년단이 '21세기 비틀스'로 불리는 배경은 글로벌 거대 팬덤을 통해 산업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는 점,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만들고 있다는 점 때문"이라며 "이런 영광스러운 타이틀이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며 해외 메이저 시상식, 특히 그래미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록 그래미 수상의 꿈은 이룰 수 없게 됐지만 방탄소년단의 도전은 계속된다. 방탄소년단은 이미 미국의 3대 음악 시상식인 빌보드 뮤직 어워즈(BBMA)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에서 수상에 성공한 바 있다.

오는 24일 열리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도 재차 '팝/록(Pop/Rock) 장르 페이보릿 듀오/그룹(Favorite Duo/Group)'을 비롯해 '투어 오브 더 이어(Tour of the Year)', '페이보릿 소셜 아티스트(Favorite Social Artist)'까지 총 3개 부문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방탄소년단이 또 한번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K팝의 자긍심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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