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5 그랜저 쏘나타 인기차들 일제 '파격'
▽ 미래 혁신 속 '젊은 도전 문화' 체질 변화
현대차그룹이 신차에 과감한 디자인 드라이브(design drive)를 거는 분위기를 평가한 한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대와 기아차의 신차들이 모두 이전 점진적 패밀리룩 진화상을 벗고, 파격적 변신을 택했다. 미래 혁신을 기치로 내건 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가 현대차의 '중년 패밀리카' 이미지를 버리고, 젊은 소비자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디자인 변화를 꼽으라면 3세대 K5와 더 뉴 그랜저다.
기아차가 3세대 K5 디자인을 지난 12일 공개했다. ‘역동성의 진화’를 주제로 과감한 디자인 요소를 대거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인 신형 K5는 전장과 전폭이 각각 50mm, 25mm 늘어났고 전고는 20mm 낮아지며 더욱 스포티한 패스트백 스타일로 설계됐다. 실내공간을 가늠할 수 있는 휠베이스는 2850mm로 동급 최대 수준을 갖췄다. 기아차 디자인 상징이던 '호랑이 코' 형태 라디에이터 그릴은 전조등과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릴은 가로로 더 길어졌고 그릴 패턴은 상어 껍질을 모티브로 삼았다. 생체활력징후(바이탈사인)를 본딴 주간주행등(DRL)은 K5에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역동성을 부여했다. 덕분에 무난한 패밀리카 이미지를 완전히 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현대차그룹의 디자인 파격 행보는 인기 차 전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아반떼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시작으로 신형 쏘나타, K7 프리미어, 더 뉴 그랜저 등이 정형화된 디자인 틀을 완벽히 탈피했다. 각 차량 디자인은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 있지만, 현대차그룹이 변화의 두려움을 버렸고 젊은 취향을 반영한다는 것은 업계 공통의 평가다. 아반떼는 전투기를 형상화한 삼각형 디자인으로 변신했고 쏘나타도 전고를 낮추며 쿠페 디자인으로 거듭났다.
그랜저 역시 기존 곡선을 살린 우아한 디자인을 버리고 그릴부터 전조등까지 다이아몬드 형상의 '파라메트릭 쥬얼'로 통합된 디자인을 채택했다. 덕분에 중장년이 타는 '아빠차'에서 30~40대를 위한 '오빠차'로 탈바꿈에 성공했고 사전계약 첫날에만 1만7294대가 계약되는 신기록도 세웠다. 기아차는 콘셉트카를 그대로 양산할 정도로 더 파격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올해 3월 서울모터쇼에서 공개된 콘셉트카 '모하비 마스터피스'를 모하비 부분변경 모델 모하비 더 마스터에 고스란히 옮겨냈다. 이후 생산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주문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신차급 변경이 이뤄진 K7 프리미어 역시 월 5900대 규모인 생산설비가 약 4개월 동안 완전가동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이클래스'를 표방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셀토스도 7월 출시 이후 소형 SUV 시장 1위를 차지하며 지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국내외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고 있지만 올해들어 현대차와 기아차 판매량은 1년 전과 비교해 각각 4.5%, 0.8% 늘어났다. 현대차그룹의 극적인 변화에 대해 업계에서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행보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2017년 현대차 소형 SUV 코나를 출시하며 하얀 면티와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현대차에 자리잡은 딱딱한 격식을 깨기 위해 스스로 나선 것이다. 올해 3월에는 직원 복장규제도 없앴다. 정 부회장은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며 현대차그룹 직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모빌리티 이노베이터스 포럼2019’에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혁신적 모빌리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현대자동차그룹은 보다 넓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간 중심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모빌리티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사내에서 인문학 강좌를 여는가 하면 본사 1층에 전시하는 차량 수도 대폭 늘렸다. 현대차는 기존 1층 자동차 전시대에 제네시스 G90, 기아차 K9, 현대차 넥쏘 등 그룹을 대표하는 차량들과 신차를 중심으로 몇 대를 전시했다. 최근에는 전시 차량을 3배 가량 늘리고 직원들이 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점심시간이면 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직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부터는 직원 대상 시승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자신들이 만드는 차를 더 가까이서 보고 경험하며 사람의 편의를 위해 어떤 개선이 필요할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환경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제품 속에 인간에 대한 성찰과 이해를 담아야 한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지론과도 맞닿는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