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7시께 강원 삼척시 원덕읍 신남마을 입구. 전날 비바람에 늘어진 '태풍 미탁 피해복구 자원봉사자 여러분에 감사한다'고 쓰인 현수막을 김동혁(63) 이장이 가로등 기둥에 다시 팽팽하게 당겨 매고 있었다.
그는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현수막이라도 정성으로 관리해야지"라며 도로를 건너 이재민용 임시조립주택 단지를 향해 발길을 서둘렀다.
그곳에는 24㎡ 크기의 임시조립주택 8동이 설치돼 있었다.
일주일 전인 지난달 25일 임시조립주택으로 옮겨온 이재우(64)씨가 김 이장을 반갑게 맞이하며 일회용 종이컵에 담은 따뜻한 차 한잔을 권했다.
친구 사이인 이들의 대화는 10분 넘도록 이어졌다.
"그때 비가 이렇게 억수같이 쏟아진 건 난생처음이었지. 이번에 이장이 큰일 했어. 만약에 대피를 하지 않았으면 정말 여러 명 죽었을 거야.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끔찍해…" 옆에 앉아 있던 이씨의 부인 어복순(62)씨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희망이 없다"고 한숨을 쉬자 김 이장은 "그래도 다시 시작해야 안 되겠나"며 다독였다.
이씨 부부의 집은 신남마을 입구인 옛 7번 국도 위쪽 산 아래 자리 잡은 새마을 동네다.
새마을 동네에는 모두 8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그러나 태풍 미탁이 덮친 지난달 2일 밤부터 3일 새벽 사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주택 8채 중 2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머지 6채도 폐허가 됐다.
당시 신남마을 등 원덕읍에는 2일부터 3일 오전 8시까지 341㎜에 이르는 물 폭탄이 퍼부었다.
"불편한 점은 없느냐"는 물음에 이씨는 "그날의 아수라장 속에서 건진 것은 고무장화 한켤레와 입고 있던 옷 한 벌이 전부인데 불편한 것이 어디 하나둘이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평생을 어부로 살았지만,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이후 한 달 넘도록 바다에 나가지 못했다.
여전히 비 오면 불안하고 무서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신남항에서는 예전에 매일 오전 5시면 15∼16명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지만, 요즘은 1∼2명 정도만 출항한다.
황두안(61) 신남마을 어촌계장은 "어구를 다 잃어버려 의욕이 없는 데다 아직 항구에 토사가 가득 쌓여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처럼 이날도 신남항에서는 준설작업이 한창이었다.
항구 옆에서는 임시조립주택 설치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 이장은 "태풍은 주민들이 평생 살아온 보금자리뿐만 아니라 그릇, 가구, 가족사진 등 오랜 삶의 흔적인 추억까지 휩쓸고 지나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모두가 함께 겪은 이번 시련을 통해 마을 주민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계기도 됐다"며 "신남마을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이장이 재기를 다짐하는 순간 집 앞에서 새로 장만한 어구를 정리하는 주민 어깨 위로 따뜻한 아침햇살이 내려앉았다.
태풍 미탁으로 삼척에서는 이재민 639가구·1천167명, 주택 677채, 도로 76개소, 상수도 17개소 등 총 4천287건에 271억여원의 피해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