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게임의 달인’ 재미 동포 케빈 나(36)가 지난 7일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슈라이너스아동병원오픈에서 성공한 퍼트 길이는 총 558피트11인치다. 약 170m. 역대 PGA투어 최장 거리 신기록이다. 72홀 기준으로 홀당 평균 2.36m의 퍼트를 넣었다는 뜻이다.
케빈 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퍼팅 기술 중 하나가 ‘30㎝ 지나가게 치기’다. 그는 “선수들이 홀 주변을 자주 밟고 다니기 때문에 홀은 눈에 안 보이지만 분화구처럼 솟아 있다”며 “속도가 줄면 공이 홀 앞에서 좌우로 꺾이기 쉽다”고 설명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케빈 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퍼팅 기술 중 하나가 ‘30㎝ 지나가게 치기’다. 그는 “선수들이 홀 주변을 자주 밟고 다니기 때문에 홀은 눈에 안 보이지만 분화구처럼 솟아 있다”며 “속도가 줄면 공이 홀 앞에서 좌우로 꺾이기 쉽다”고 설명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연습은 생활, 한국 예능 보기 ‘덕후’

잘 알려진 웨지의 달인인데 퍼트까지 잘 되니 기세가 무섭다. 투어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는 139위(293.4야드)로 평범하다. 하지만 퍼팅 이득 타수에서 2위에 자리할 정도로 물이 올랐다. 그는 통산 4승 중 3승을 최근 16개월 새 얻었다. 최근 한 행사장에서 만난 케빈 나가 국내 팬들 앞에 들고나온 클럽도 퍼터였다. 그는 “가장 애용하는 클럽이 60도 웨지였는데 요새는 ‘요놈’, 퍼터가 가장 좋다”며 “(퍼터가) 요즘 내 밥줄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여덟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의 한국어는 놀랍도록 유창했다. 한국말을 잘한다는 칭찬에 너털웃음을 지은 그는 “나만큼 예능을 많이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PGA 선수들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정말 다양합니다. 브라이슨 디섐보는 포트나이트(비디오게임)를 미친 듯이 하고, 저 같은 경우는 한국 예능을 봐요. 다른 데 집중하면 경기 생각을 잊을 수 있어요. 이번에 (슈라이너스아동병원오픈) 3라운드가 끝나고는 god와 백지영 씨가 게스트로 나온 ‘아는형님’을 보고 잤는데 결과가 아주 좋았죠(웃음).”

사람들은 그를 케빈 나로 부르지만, 그는 ‘나상욱’으로 살았다. 인생도 골프도 그랬다. 지금의 쇼트게임 역시 아버지의 ‘한국식 교육’이 없었다면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LA) 집 근처 한 골프장은 항상 월요일에 문을 닫았습니다. 골프장 보수로 쉬는 날이었죠. 연습 그린은 항상 제 차지였습니다. 공 200개를 치고 줍기를 반복했어요. 연습 그린을 수리해주시던 아버지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요. 하하.”

골프, 가족, 한국인…내 인생 키워드

어릴 때부터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해온 케빈 나의 쇼트게임은 그래서 따라하기 어렵다. 한국(계) 후배들이 그의 쇼트게임을 배우러 찾아왔다가 고개를 젓고 돌아갔다. 구사할 수 있는 웨지샷의 종류를 묻자 그는 두 손을 모두 펴 보이고도 모자란다는 표정을 지었다.

“(웨지샷 종류를) 셀 수 없는걸요. 예전에 김경태 선수, 배상문 선수, 대니 리가 제게 한 말이 있어요. ‘형 어프로치 열심히 보고 따라했는데 안 된다’고. 그만큼 제 쇼트게임 스타일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정석은 손목을 많이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저만큼 손목을 많이 쓰는 선수도 없어요. 유일한 ‘팁’이라면 저는 밥을 푸듯 러프에서 공을 떠낸다는 느낌으로 칩니다.”

그는 뿌리가 어디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한국어로 된 자신의 뉴스를 아직도 챙겨보고 댓글도 읽으며 지낸다. 가족과도 늘 한국말로 대화한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골프”라는 그는 한국 팬들의 응원에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17일 개막하는 PGA투어 CJ컵에서 지난 6월 한국오픈 이후 4개월 만에 국내 팬들을 찾을 예정이다.

“이번 대회는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CJ컵 그리고 조조챔피언십(일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프레지던츠컵 미국팀 단장으로 추천선수 선발 자격이 있는) 타이거 우즈에게 제가 잘하고 있다는 걸 어필해야 하거든요. 비록 저는 미국팀으로 나서겠지만, 인터내셔널팀뿐만 아니라 미국팀에서도 한국 선수를 볼 수 있다면 한국 골프 팬들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즈에게 문자로 열심히 연락도 했으니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요.”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