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태풍으로 낙과 피해 겹쳐…"약값도 못 건져" 발만 동동
"그동안 든 약값과 인건비도 못 건집니다.
"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추석 이후 사과, 배 등 과일 출하량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폭락해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가을 태풍까지 겹치면서 수확을 앞두고 무더기로 낙과 피해까지 본 농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서 1㏊ 사과 농원을 운영하는 송기석씨는 24일 "추석 때는 홍로 한 상자(10㎏) 가격이 상품 기준 4만5천원에서 5만원까지 갔는데 지금은 5분의 1밖에 안 되는 1만∼1만5천원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이렇게 받아서는 소독약값과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렵다"며 "차라리 안 짓는 게 맞지만, 다음 달부터 엔비나 후지, 부사 등 만생종이 나오면 값이 더 내려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출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추석이 작년보다 열흘이나 빨라진 탓에 차례상에 오르는 홍로 품종의 착색이 늦어지면서 제때 출하를 많이 하지 못했다.
송씨는 "농민들이 만나서 하는 얘기가 전부 올해 홍로 농사는 폭망했다는 말뿐"이라며 "가을장마에 이른 추석, 짧은 연휴가 겹친 데다 수입산 과일로 인해 수요가 줄면서 인근에 사과 농사를 포기한 과수원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예산군의 홍로 재배면적은 278㏊로 군 전체 재배면적 1천210㏊의 23%를 차지한다.
전체의 65%를 차지하는 후지(787㏊) 다음으로 많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냉해나 탄저병 피해가 없어 홍로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0% 증가한 8천340여t가량 수확될 전망이다.
전북 장수사과도 올해 생산은 풍년을 이뤘지만,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 시름이 깊다.
장수군의 올해 사과 생산량은 2만9천700여t으로 지난해 2만2천t보다 35%(7천700여t)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홍로 가격은 작년과 비교해 절반 이하까지 떨어졌다.
이른 추석과 태풍 등 기후 악조건이 판매 저조와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사과값이 폭락하자 농민들은 이날 장수군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안정적인 판로 확보 등을 요구했다.
나주 배도 가격 폭락을 피해가지 못한다.
나주에서는 2천300여 농가가 2천여㏊ 면적에서 전국 생산량(23만t)의 24%가량인 5만6천t을 생산하고 있다.
나주산 신고배는 추석 전 7.5㎏ 한 상자에 2만2천∼2만3천원 선이었으나 현재는 15㎏ 한 상자에 최상품이 3만원, 그 이하는 2만7천∼2만8천원에 거래되는 실정이다.
거의 60% 수준으로 가격이 내려간 셈이다.
추석 전 10여일 동안 비가 계속되면서 수확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평년 추석 때 50% 수준이던 수확률이 40%에 그쳐 홍수 출하로 이어지고 있다.
전국 최고급 복숭아 산지인 충북 음성지역 농가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음성 감곡농협에 따르면 추석 전 4.5㎏ 한 상자에 2만2천원 하던 복숭아 가격이 최근 1만5천원으로 31% 폭락했다.
지난해 이맘때 시세(1만8천원)보다도 16%가 떨어졌다.
감곡농협 관계자는 "작년에는 5천39t의 복숭아를 수확했으나 올해는 5천562t이 출하돼 물량이 늘어난 데다 추석 이후 사과와 배 등 다른 과일 출하까지 한꺼번에 몰려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정동 음성 복숭아 수출작목반 회장은 "작년보다 수확량은 늘었지만 봄철 냉해, 병충해에 최근 태풍까지 겹치면서 품질이 떨어져 제 가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추석 이후 태풍으로 낙과 피해까지 발생해 농심이 멍들고 있다.
나주 배는 최근 잇따른 태풍으로 적지 않은 낙과 피해를 봤다.
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잦은 비 영향으로 상품 보관 과정에서 표면에 얼룩이 생기는 과피 얼룩 증상이 생길 수 있어 상품성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에서 2㏊ 넘는 면적에 사과를 재배하는 임모씨는 지난 주말 강타한 태풍 '타파'로 재배면적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사과가 떨어지고 묘목이 쓰러지는 피해를 봤다.
10일 후 출하를 앞둔 양강 품종이라 그의 상심은 더 크다.
임씨는 "사과 농사를 20년간 해오면서 올해 같은 피해는 처음 봤다"면서 "봄에는 서리 때문에 과일이 부실하게 달려 마음을 졸였는데 결국 태풍으로 한순간에 농사를 망쳤다"고 허탈해했다.
(김재선 김동철 박주영 전창해 한무선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