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 노조가 16일(현지시간) 12년만에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GM과 전미자동차노조(UAW) 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파업 장기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한국GM 노조가 명분 싸움에서 된서리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노조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GM이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가 본질이다.

◇ 한국 이어 미국 GM도 12년만에 파업

UAW GM 소속 노동자 약 4만9000명은 16일(현지시간) 0시를 기점으로 파업을 시작했다.

2007년 이후 12년 만의 파업이다. 미국 노조가 파업에 나서며 미국 내 30개 공장, 22개 부품창고가 문을 닫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액이 하루 9000만 달러(약 1066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노사는 파업 첫날인 16일 오전부터 협상에 들어갔지만 5시간 넘는 대화에도 서로 간의 입장차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노조 대변인 브라이언 로텐버그는 "노사 협상에서 고작 2% 합의했고 나머지 98%에 대해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며 "파업이 조금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노조의 파업에 한국GM 노조는 미국 노조의 파업과 동조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에 이어 미국 노조가 파업에 나선 건 GM 경영 전반 문제에 글로벌 노조가 단체 반발하고 있다는 여론을 끌어낼 수 있어서다.

한국GM 노조는 앞선 9~11일 전면파업을 벌였다. 한 노조 관계자는 “해외사업장인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파업을 하기보다 UAW와 같은 입장에서 파업을 진행하면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 기본급·성과급 '돈' 한국GM 노조 파업

다만 미국과 한국에서 노조가 파업에 나선 원인과 요구사항에는 차이가 있다. 또 미국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GM이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GM 노조는 기본급 12만3526원(5.65%) 정액 인상, 1인당 1650만원 규모의 성과급·격려금 지급, 지난해 축소했던 복리후생 복구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한국GM은 “‘임금 인상과 성과급은 회사의 수익성 회복에 따라 결정되며, 전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분을 상회하지 않는다’는 단협상 약속을 노조와 맺었다”며 지난 5년간 4조4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낸 만큼 흑자전환이 이뤄지기 전까지 임금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 사측이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레일 블레이저, 신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등 신차 물량을 확보했고 쉐보레 수입차를 통해 판매량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노조가 약속을 지킨다면 내년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GM 부평공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GM 부평공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 '고용 안정' 외치는 미국GM 노조 파업

한국 노조 요구가 기본급 인상 및 성과급 지급 등 '돈'에 맞춰진 반면 미국 노조는 고용 안정을 주장하고 있다.

테리 디테스 UAW 부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노조와 GM이 수개월간 협상했지만 공장 폐쇄에 따른 고용안정 보장, 의료보험 등 복지 개선, 임금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파업 이유를 밝혔다.

GM은 글로벌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미국 내 4개 공장을 폐쇄할 방침이다. GM은 지난해 11월 디트로이트시 햄트램크, 오하이오주 로즈타운, 미시간주 워런,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조립공장을 폐쇄하고 1만40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GM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노조가 파업을 선택한 셈이다.

GM은 올해 말 오하이오주와 미시간주 공장을 폐쇄한 뒤 전기차 공장과 배터리 공장을 가동해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방침이지만, 노조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 가동까지 최소 4년이 걸리는데 그 기간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 탓이다.

◇ '명분' 싸움, 한국GM 노조 된서리 우려

미국 노조의 파업에 한국GM 노조가 된서리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공장이 폐쇄된 탓에 고용보장을 외치며 파업에 나선 미국 노조, 반면 신차 배정에도 임금 인상을 외치며 파업에 나선 한국 노조의 요구는 명분의 무게가 다른 탓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미국 내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트 대통령은 GM과 UAW를 향해 “만나서 합의”를 촉구하며 일자리 감소에 직접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GM 본사가 미국 노조를 설득하려면 추가적인 비용 투입이 필요하다.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 가동까지 공백으로 남는 4년 동안 생산할 차량도 확보해야 한다. 한국GM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국내 생산 물량을 빼앗기는 최악의 결과도 예상할 수 있다.

지난달 방한한 줄리언 블리셋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한국GM 노조의 파업에 실망을 드러내며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 일부 물량을 다른 국가로 넘길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노조가 파업을 강행한 만큼 GM 역시 그에 상응하는 수위의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가령 부평공장에서 생산되는 트랙스를 미국으로 이전하면 한국GM 노조의 파업에 대한 징계와 미국 노조의 생존권 보장 요구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다. 트랙스는 지난해에만 23만9800여대가 수출된 효자 차종이다.

업계 관계자는 “5년 연속 적자가 났고, 임금 동결에 합의한 상황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한 한국 노조에 대한 GM의 시선은 매우 부정적”이라며 “미국 노조는 일자리 보장이라는 명분을 갖췄고 파업으로 인한 손실 규모도 커 회사에서 합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 노조와의 합의 과정에서 한국GM 노조가 불이익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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