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의료 데이터 활용하면 환자 맞춤형 치료 앞당길 수 있다"
“의료 데이터와 개방형 혁신을 통해 맞춤의료의 미래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론 박 로슈 맞춤의료 전략 총괄부사장(사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탠퍼드 의대 출신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지난 5일 서울바이오경제포럼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박 부사장은 “로슈는 유방암 치료에서 세계 최초로 HER2라는 특정 유전자 변이를 타깃하는 표적항암제 ‘허셉틴’을 개발한 이후 특정 유전자 변이를 타깃하는 표적 치료제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표적항암제 개발 이전에는 HER2 양성 유방암이 예후가 매우 나쁜 유방암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HER2 유방암으로 진단이 되면 ‘다행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존율을 크게 높였다.

로슈는 지난해 본사 조직 내에 맞춤의료센터인 ‘센터 포 PHC 엑설런스’를 설립하고 제품 연구개발(R&D) 단계부터 환자 개개인의 유전체 정보에 기반한 진단과 치료제를 연계한 맞춤치료 옵션을 개발하고 있다. 전 세계 환자들의 처방 데이터인 리얼월드데이터(RWD)를 포함한 방대한 의료 데이터의 활용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RWD를 활용하면 임상시험 비용, 소요 기간,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독감 치료제 ‘조플루자’는 RWD를 통해 독성 시험을 면제받았다. FDA는 조플루자의 반복 투여가 독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임상 자료를 요구했으나 로슈가 다른 독감치료제인 타미플루의 16년간 RWD를 분석해 한 시즌 동안 반복 투여 가능성이 적다는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박 부사장은 RWD를 활용한 신약 개발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당뇨망막병증 환자들의 망막 사진을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고위험군이나 약물 반응도가 높은 환자군을 높은 수준의 정확도로 선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정보기술(IT) 발전에 힘입어 의료 데이터들이 전자화돼 축적된 덕분에 제품 개발이나 임상시험에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맞춤의료 시장에서 한국의 역할도 강조했다. 한국은 환자 개개인이 적시에 유전체 정보에 기반한 최적의 치료 옵션을 제시할 수 있는 맞춤의료 구현을 가장 빠르게 달성할 수 있는 국가라는 게 박 부사장의 평가다. 수십에서 수백 개 유전자 변이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이 암종에 무관하게 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의료진 및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다. 박 부사장은 “맞춤의료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 의료기관, 제약기업, IT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개방형 혁신과 협력이 중요하다”며 “제약산업이 성숙해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IT에 기반한 선진화된 헬스케어 시스템을 갖춘 한국이 맞춤의료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