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관계자들 '한국속 도시' 불리는 부대안서 식사·쇼핑 해결
미군·군무원 대상 렌탈하우스 공급과잉…영내 독신자 숙소오픈도 악재

[편집자 주 =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지난해 여름 서울 용산에 있던 주한미군사령부가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K-6)로 옮겨오면서 바야흐로 '한국속의 미국 도시'로 불리는 주한미군 평택 시대가 열렸습니다.

미군기지 이전 1년여가 지난 현재 평택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지, 주한미군과 평택시민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 기획 기사 두 꼭지를 일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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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평택시대 1년] ① 제2의 이태원 가물가물…특수실종
주한미군기지 재배치 계획에 따라 서울 용산과 경기북부 부대가 지난해 평택으로 이전했다.

평택 팽성읍 안정리 일원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 기지는 기존 498만㎡(151만평)에서 여의도 5배 면적인 1천467만㎡(444만평)으로 3배가량 몸집이 커졌다.

미국 본토 밖 미군기지 중 단일기지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주둔 인원도 미군과 군무원, 그 가족 등을 합쳐 기존 9천명에서 3만3천여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오산공군기지(K-55)까지 합하면 인구 50만 도시 평택에서 미군기지 관계자는 4만5천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수준이 됐다.

[주한미군 평택시대 1년] ① 제2의 이태원 가물가물…특수실종
◇ 실종된 '특수' = 지난달 30일 오후 9시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스 앞 안정리 로데오 거리.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저녁 시간인데도 거리엔 지나다니는 사람을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간혹 미군 전용 클럽과 같은 술집에는 미군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두세명 있었으나 대부분의 식당이나 잡화점에는 손님이 없었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며 "주둔 인원 3만3천명 중 10%, 아니 5%만 부대 앞 거리에 나오더라도 300m밖에 안 되는 로데오거리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빌 텐데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혀를 찼다.

평일 점심시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
피자나 케밥, 수제 버거 등을 파는 여러 식당을 둘러봤지만 많아야 한두 테이블만 찬 상태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온 한 미군은 "부대 안에 쇼핑센터가 있어 식사나 쇼핑은 주로 영내에서 해결한다"며 "이태원만큼 시설이 좋은 식당이 부족하기도 하고, 저녁에 가족들을 데리고 갈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부대 앞 상인들은 안정리가 이태원만큼이나 번화해질 것이라 기대했으나 1년이 지난 현재, 상권은 오히려 전보다 못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주한미군 평택시대 1년] ① 제2의 이태원 가물가물…특수실종
미군과 군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렌탈하우스 임대 시장도 불황을 겪고 있다.

미군기지에는 영내 주택에 거주하는 인원도 많지만, 영외에 사는 군인과 군무원 등도 5천500여 세대에 이른다.

부대 인근에는 지난 10여년 동안 이들을 대상으로 한 렌탈하우스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맞지 않아 비어 있는 곳이 많은 상황이다.

실제로 2층짜리 단독주택에 자그마한 정원과 테라스가 딸린 고급스러운 한 주택 단지에 가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주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주택단지에서 만난 한 군무원은 "주변에 10여 채가 빈집"이라며 "한때 렌탈하우스가 부족하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빈 곳이 많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작년 하반기에는 집이 모자랄 정도였는데 요즘엔 한 20% 가까이 비어 있는 것 같다"며 "부대 상황에 따라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일어나다 보니 일시적으로 공실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역 부동산 업계에서는 최근 부대 안에 350여 세대에 달하는 독신자 숙소가 개장하면서 부대 밖에서 안으로 옮겨간 세대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년 봄까지는 임대시장 불황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한미군 평택시대 1년] ① 제2의 이태원 가물가물…특수실종
◇ 변화하는 안정리 = 주둔 인원은 늘었는데 상권이 침체한 이유에 대해 지역 상인들은 부대 내부에 있는 대규모 쇼핑센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대 내 쇼핑센터 'X EXCHANGE'에는 푸드코트와 군용 물품점, 스타벅스 커피전문점, 미국 시민권자만 출입이 가능한 대형 할인 마트 등이 있다.

주변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스테이크 레스토랑 등 고급 식당도 입점해 있다.

쇼핑센터에 가보니 평일 퇴근 시간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 찼고, 내부는 쇼핑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부대 밖 로데오 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또한 로데오 거리 상인들은 이태원 눈높이에 부족한 낙후된 거리, 가족 단위 고객을 유치할 인프라 부족 등을 상권 침체의 이유로 꼽았다.

김창배 팽성상인연합회장은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발표된 지 벌써 17년이 지났는데, 평택시와 상인, 지역사회 모두 변화에 대한 대처가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부대가 커지고 편의시설이 확충되면서 1년짜리 단기 파병으로 혼자 오는 군인보단 가족 단위로 2년짜리 파병을 오는 군인이 훨씬 많아졌다"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대 앞 미군 클럽보단 가족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을 찾기 마련인데 아직 안정리에는 이런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나마 안정리 로데오 거리는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십 년 된 상가건물이 헐리고 가족 단위 고객을 맞이할 깨끗한 상가와 오피스텔 등이 지어지고 있다.

독신 남성 군인을 주요 타깃으로 하던 술집은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는 공간이 구비된 '펍' 형태로 변신중이다.

평택시도 로데오 거리에 예술인 광장을 조성해 미군들이 머물고 즐길 거리를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다.

[주한미군 평택시대 1년] ① 제2의 이태원 가물가물…특수실종
평택시 관계자는 "안정리도시재생 사업이 현재 국토부 심의 중"이라며 "앞으로 시는 150억원을 투입해 부대 일대에 주차장이나 도로 등 기반시설은 물론, 광장 조성 등 즐길 거리 제공을 통해 로데오 거리 상권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