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허탈할 뿐"…전주·남원·순창·무주·고창 등서도 피해
[르포] "수확이 코 앞인데"…황금빛 김제 평야 할퀸 태풍 '링링'
"이제 곧 수확인데…너무 속상하죠. 황당해서 뭐라고 말할 기운도 없네요.

"
기록적인 강풍을 동반한 태풍 '링링'이 전북을 스친 7일 오후.
쌀 주산지인 김제평야에서 만난 한 농민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황금빛 결실이 맺혀있던 농민의 삶터는 강풍으로 벼가 눕혀진 채 움푹움푹 패어 있었다.

옆의 다른 논은 아예 벼 전체가 쓰러져 흙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무더위를 견디고 탐스러운 알곡으로 가득 찼던 벼들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수확의 기쁨에 들떠야 할 농민의 얼굴은 구름이 잔뜩 낀 하늘빛과 같아 보였다.

재해는 이날 새벽에 일어났다.

서해안을 따라 북상한 태풍 링링은 전북 전역에 비와 함께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을 몰고 왔다.

무거운 알곡을 매달고 이제 막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벼들은 나무가 쓰러질 정도의 강한 바람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수십 가구밖에 되지 않는 이 마을에서 절반 이상의 농민이 강풍으로 벼가 쓰러지는 피해를 봤다.

강수량은 많지 않아 침수 피해는 없었지만, 논 곳곳에서 이러한 벼 쓰러짐 피해가 확연했다.

[르포] "수확이 코 앞인데"…황금빛 김제 평야 할퀸 태풍 '링링'
익명을 요구한 이 농민은 "아침에 일어나보니 논이 이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며 "여기서만 10년 가까이 농사를 지었는데 이렇게 처참한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식같이 키운 벼를 한순간에 잃고 나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허탈할 뿐이다"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링링'이 휩쓸고 간 전북에서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김제를 비롯해 전주, 남원, 순창, 무주, 고창 등 곳곳에서 벼 쓰러짐 피해가 잇따랐다.

전북도는 이날 오후 2시 기준으로 80㏊ 이상의 논에서 이러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태풍이 지나간 이후에도 신고가 속속 집계되고 있어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도는 예상했다.

도 관계자는 "오후에도 지자체에서 도복 피해가 계속해서 접수되고 있다"며 "정확한 피해 면적을 집계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