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만 보였던 ‘마이너스(-) 금리’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의 국채를 매입하면 투자자들은 투자금보다 적은 돈을 만기에 받게 된다. 하지만 마이너스의 폭이 커지면 자본이득이 발생한다. 앞으로 경제가 더 나쁠 것으로 예상되자 마이너스 금리도 늘고 마이너스의 폭도 커지고 있다. 스위스의 10년물 국채는 연 -1%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마이너스 기준금리 빠르게 확산

현재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마이너스인 국가는 일본(연 -0.10%), 스웨덴(-0.25%), 덴마크(-0.65%), 스위스(-0.75%) 등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총괄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는 연 0%다. 시중은행이 ECB에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되는 예금금리는 이보다 낮은 연 -0.40%다. 파운드화를 사용하는 영국의 기준금리는 연 0.75%다.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운용하기 시작한 곳은 스웨덴이 처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7월 스웨덴 중앙은행이 세계 최초로 지급준비금 금리를 연 -0.25%로 인하했다. 이어 덴마크와 스위스 중앙은행이 각각 2012년과 2014년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췄다. 이들 세 국가는 유로화가 아니라 자국 화폐를 사용하고 있다. ECB는 2014년 6월 출범 후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했다.

마이너스 금리의 핵심 목표는 경기 부양이다. 자금을 중앙은행에 맡기면 수수료를 부과할 테니, 기업과 가계에 더 투자하라는 뜻이다. 기준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에 지급준비금을 맡기는 대가로 수수료를 내야 한다. 마이너스 금리는 자국 통화 강세를 막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비(非)유럽 국가에선 일본이 2016년 1월부터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국채·은행 예금금리도 마이너스 시대

세계 각국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까지 낮추면서 채권시장에서도 마이너스 금리가 대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세계에서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된 채권 금액은 17조달러(약 2경580조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 중 94%가량이 유럽과 일본 국채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 4일 한때 연 -0.295%까지 떨어져 2016년 7월 이후 3년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4일 종가는 연 -0.264%였다.

국채금리의 마이너스 폭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독일의 10년짜리 국채금리는 올 3월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하지만 2분기 경제성장률이 -0.1%(전기 대비)를 기록하자 낙폭이 커져 4일엔 연 -0.659%까지 하락했다. 프랑스의 10년짜리 국채도 6월 말 마이너스로 돌아섰으며 4일 연 -0.372%로 떨어졌다. 스위스의 10년 만기 국채는 연 -0.971%다.

은행 예금금리도 마이너스로 바뀌고 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오는 11월부터 200만스위스프랑(약 24억원) 이상 개인 계좌에 연 0.75% 수수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금리는 ‘제로(0)’이고 수수료가 붙다 보니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다. 크레디트스위스도 이달부터 100만유로(약 13억3000만원) 이상 개인 계좌에 연 0.4%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다. 덴마크 위스케뱅크는 예금 잔액 750만크로네(약 13억3500만원) 이상 계좌에 연 0.6%의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美도 마이너스 금리는 시간 문제”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연 1.5%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미국 경제가 유럽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4일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미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앞서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미 국채 수익률이 제로 밑으로 떨어지는 데 아무런 장벽이 없다”고 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세계 경제에서 ‘부(富)의 효과’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등 주요 증시가 조정을 받는다면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며 금리가 빠른 속도로 마이너스에 접어들 것이란 게 그의 판단이다.

국제금융센터는 5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일본과 독일에 이어 영국과 미국 등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은행 수익성 악화 등에 따른 금융시스템 불안정성도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정연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