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홍수 출하로 일꾼 구하기 어렵고, 생산량 늘었으나 가격은 하락
방풍막 치고 지지대 받치며 태풍 대비 안간힘

[사과 산지 르포] "익지 않은 사과 딸 수도 없고"…태풍 예보에 농가 한숨
"주말에 태풍이 올라온다는데…익지도 않은 걸 딸 수도 없고 걱정이네요.

"
장대비가 소강상태를 보인 지난 4일 오전 충남 예산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이재수(68) 씨는 적과 가위로 사과 꼭지를 잘라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에도 비 소식이 있어 오전까진 수확을 마치고 선별기를 돌려야 한다.

그런데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밭은 한도 끝도 없어 보였다.

이씨는 예산군 신암면에서 1만9천여㎡ 규모의 사과 농원을 운영한다.

지난달 27일부터 부인과 둘이서 추석을 앞두고 한창 홍로 품종을 수확하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출하 일정은 잡지 못했다.

매년 추석을 앞두고 10여명 정도 투입해 하루 이틀 안에 작업을 끝내는데, 올해 추석이 지난해보다 열흘 정도 빨라지면서 차례상에 오르는 홍로가 아직 익지 않은 탓이다.

추석에 맞춰 출하하려면 최소한 10일까지는 5㎏짜리 상자에 포장해 예산 능금조합 공판장에 납품하는 과정까지 끝내야 한다.

이씨는 "매달린 상태에서는 붉은 것도 실제로 따 보면 노란 기가 돈다"며 "더 새빨갛게 익었을 때 따야 하는데 색도 안 나고, 알도 굵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올해는 냉해 피해도 없었고 탄저병 발생 비율도 낮아 작년보다 사과 작황은 좋은 편이다.

[사과 산지 르포] "익지 않은 사과 딸 수도 없고"…태풍 예보에 농가 한숨
이씨 농가의 올해 수확 예상량은 10t 정도로 평년보다 소폭 늘 것으로 기대된다.

예산군에서는 올해 1천200여 개 농가에서 총 3만여 t의 사과가 수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평년 대비 2∼3% 많은 것이다.

수확량이 증가하면서 가격은 작년보다 15∼20%가량 떨어졌다.

박성문 군 농업기술센터 지도사는 "올해 초봄에는 이상저온에 따른 낙과가 없었던 데다 여름 폭염 일수도 짧고 강수량이 적었던 덕분에 탄저병 발생률이 낮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추석이 작년보다 빨라져 착색이 잘 안 된 경우가 있다"며 "올해 사과 도매가는 10㎏짜리 상(上)품 기준 4만∼4만5천원 선으로 지난해보다 5천∼1만원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홍로는 대부분 추석에 소비되는 품종이라 농가들이 한꺼번에 출하하면서 가격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과 산지 르포] "익지 않은 사과 딸 수도 없고"…태풍 예보에 농가 한숨
이씨는 "홍로는 단기간에 홍수 출하가 이뤄지는 데다 외국 과일로 많이 대체돼 소비가 줄면서 해마다 가격이 내려가는 추세"라고 전했다.

여름에 거두는 홍로는 저장성이 떨어져 상온에서 7일 이내에 출하해야 한다.

10월 초에 수확하는 엔비·부사 등 중만생종,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거두는 후지 등 만생종은 저장성도 좋고 수시 출하하다 보니 가격이 안정적인 편이다.

예산지역 사과 농가들은 이맘때면 읍내 인력시장이나 작업반장을 통해 일꾼들을 구하려 동분서주하지만, 수확 시기가 한꺼번에 겹치다 보니 일손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다.

이씨는 "보통 일당이 7만원 정도인데 농촌 인력들은 대부분 노인이어서 일을 하기 어렵고, 그나마 일이 손에 익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들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사과 수확 시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력사무소에서 연락이 오는 대로 스케줄에 맞춰 작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이번 주말에 제13호 태풍 '링링'이 북상할 것으로 예보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씨는 "봄에는 냉해, 여름엔 가뭄과 폭염, 가을엔 태풍까지 계절마다 기상 요인 때문에 가슴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며 "과수는 가격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생산량이 늘어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나무에 방풍막을 치고 가지에 지지대를 받쳐 주며 태풍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