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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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8월 29일 ‘국정농단 사건’ 선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박 전 대통령 사면 시기와의 관련성 때문이다. 당초 야권에선 대법원이 형 확정 선고를 하고 사면 요건이 갖춰지면 올 연말이나 내년 총선 전 사면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여권이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의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야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 취임 2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사면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재판이 확정된 이후에는 사면 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돼 주목을 받았다.
사면이 조기에 이뤄진다면 박 전 대통령의 총선 영향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법원이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연말 또는 내년 총선 이전 사면 가능성에 대한 불투명성이 커졌다. 총선 전 사면 여부는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이 얼마나 조속히 마무리되느냐에 달렸지만 그 시점을 예단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원 특수활동비’ 건도 남아 있어 사면하더라도 총선 전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통령의 총선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자유한국당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비록 감옥에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변호인을 통해 정치권에 한마디 던진다면 그 파급력은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허리 디스크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이 형(刑) 집행정지로 풀려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보수 대통합을 추진하는 보수 야권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는 최근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야권 통합 움직임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 내가 말씀드릴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얘기하실 것으로 본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당과 보수 진영이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최근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보수 대통합 작업을 벌이는 것은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선 보수가 한데 뭉치는 것이 필수라는 인식때문이다.

한국당 내에서도 친박-비박 간 사사건건 갈등이 빚어지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쪼개진 상황에서는 총선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플랫폼 자유와 공화’ 등이 8월 20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개최한 ‘통합과 혁신’ 대토론회와 한국당 의원들의 토론회 등을 통해 보수 대통합 모색이 본격화된 양상이다.

대선 주자들을 비롯한 토론회 참석자들은 보수 대통합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 아래 큰 틀의 통합 방안을 마련해 가고 있다”며 “자유우파가 이길 방법은 통합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각론을 보면 시각차가 작지 않다. 통합의 방법부터 그렇다. 황 대표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한국당 중심의 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황 대표에게 야권 통합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중도 세력을 구심점으로 한 ‘제3지대 통합’을 주장했다. 바른미래당 내 유승민계 한 의원도 “친박 세력이 한국당을 지배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그냥 한국당에 들어오라고 하는 통합 형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통합의 범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는 우리공화당까지 포함하는 대통합을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도 보수 통합론을 주장하는 측은 시각이 다르다. 이들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유승민·안철수계와의 통합을 우선순위로 고려하고 있다. 우리공화당은 후순위다. 반면 한국당 내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선 보수 대통합에 유승민 의원을 포함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적지 않다.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대목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문제다. 탄핵의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분열만 심화되고 통합이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탄핵 논쟁 자체를 뒤로 미루자는 측과 그럴 수 없다는 측이 부딪치고 있다.

황 대표는 덮을 것은 덮고 넘어가자고 주장한다. 김병준 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권영진 대구시장, 원희룡 지사 등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반면 조원진 대표는 “탄핵을 주도한 김무성·홍준표 전 대표와 권성동·김성태 의원을 당에서 내보내고 유승민 의원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통합이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표명을 보수통합의 출발점으로 삼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박 전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언제 결정되느냐와 그가 어떤 메시지를 내느냐에 따라 총선판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진영이 재정비될 수도, 분열이 심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은요?”라는 한마디에 열세이던 대전시장 선거 판세를 뒤집은 바 있다.
김무성 한국당 의원은 “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박 전 대통령이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 ‘나와 연루돼 구속된 그 어떤 사람들이라도 다 풀어줘라’, ‘보수 우파 정치 세력은 분열해 싸우지 말고 통합해 문재인 정권과 싸워 나라를 구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의 기류를 볼 때 한국당이 아닌 우리공화당을중심으로 한 독자 신당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조원진 공동대표가 “우리공화당 창당 과정이나 모든 당 활동은 박 전 대통령과 교감 아래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공화당으로 오기로 결정된 한국당 의원들이 있다. 6~7명과 얘기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10월 말까지 올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측면에서 주목된다. 내년 총선판 구도는 박 전 대통령의 ‘입’에 달린 형국이다.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