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섬유산업의 뿌리인 면방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전기료 부담 등 삼중고에 미·중 무역전쟁까지 겹쳐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어서다.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폭이 커지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면방업계는 ‘생산 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놓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면방산업이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속속 문 닫는 공장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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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대표 섬유기업 경방이 이번달 31일부터 광주광역시와 용인(경기)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광주 공장은 이 회사 전체 매출의 12.6%를 차지하는 주력 공장 중 하나다. 경방은 당초 2020년 3월부터 생산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작년 10월 공시했지만 시기를 7개월 앞당겼다. 100여 명의 공장 직원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한국에는 경기 안산 반월의 염색공장만 남게 된다. 경방은 베트남에 면사 생산법인을 두고 있다. 경방은 1919년 경성방직으로 출발한 국내 1호 상장기업이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 옷감은 우리 손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설립됐다.

김준 경방 회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경영인이라면 안팎에서 어떤 악재가 닥치더라도 뚫고 나아가야 하는데 역부족이었다”며 “생산을 중단하는 광주 공장 설비를 어떻게 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76억원의 적자를 낸 이 회사 섬유사업부는 올해 상반기에만 7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갈수록 불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경방은 2017년부터 베트남으로 생산 시설을 옮겼다. 하지만 최근에는 베트남에서도 ‘미래’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산 섬유 제품에 고율 관세 부과를 선언한 이후 미국 업체들이 중국 제품 수입을 취소하는 바람에 공급이 넘쳐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경기 침체로 수요는 줄어드는데 중국에서 면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중국에서는 생산 설비를 절반 이상 놀리는 곳이 수두룩하며 베트남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직격탄

원면(면사의 원재료) 가격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섬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파운드당 88센트였던 국제 원면 가격은 이번달 58센트로 폭락했다.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에 맞서 중국이 미국의 면 수입을 금지하면서다. 국내 면방업계는 해외에서 원면을 들여와 면사를 생산한다. 원면 가격 급락 여파로 면사 가격도 덩달아 떨어져 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 국내 섬유업체들은 월 10억~3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면방 사업을 지속하기가 힘든 환경이 됐다”며 “결국 경영인이 무능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라고 자책했다. 최저임금 인상도, 미·중 무역분쟁 여파도 어떻게든 헤쳐나가며 고용을 지켜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의미다. 대한방직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2017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업계 어려움을 호소했다가 여권의 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미·중 무역분쟁의 직격탄을 맞은 섬유업계는 고사 직전이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370만 추(추는 실을 감는 막대를 세는 단위)에 달했던 국내 면방 설비는 현재 60만 추 수준으로 줄었다. 24곳이었던 대한방직협회 회원사도 9곳만 남았다. 대한방직협회 창설의 주역이었던 동일방직과 대한방직은 국내에 설비가 없어 회원사 자격 논란이 불거질 정도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