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생산·봄 무 저장량 과다가 원인…생산비도 못 건져
[르포] '뭇값 폭락'에 갈아엎고 폐기하고…농민들 "죽고 싶은 심정"
박영서 기자·양희문 노예원 인턴기자 = "내다 팔아봤자 생산비도 못 건져요.

차라리 버리는 게 낫지…"
고랭지 무 가격이 바닥을 치면서 출하 시기를 맞은 이맘때면 화색이 돌아야 할 농민들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무밭에는 이리저리 뭉개진 무가 나뒹굴고, 폭염에 썩어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6일 찾은 강원 평창군 진부면 고랭지 채소밭은 출하의 기쁨보다는 폐기의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이미 출하가 끝난 무밭에서 최모(51)씨는 굴착기와 트럭을 이용해 무밭 한편에 선택받지 못한 무들을 버리느라 분주했다.

뭇값 폭락에 애지중지 키운 무는 졸지에 돈을 들여 내다 버려야 하는 '폐기물'이 돼버렸다.

어림잡아도 5천만원은 손해 봤다는 최씨는 "어제 가락시장 경매에서 팔리지 않은 무를 도로 가져가라고 하더라"며 "힘이 두 배로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의 또 다른 무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 시장에 내놓아도 괜찮을 무였지만, 조그만 흠 때문에 상자에 실리지 못한 채 그대로 땅에 버려졌다.

최근 장마로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가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버려진 무는 더 빠른 속도로 썩어가고 있었다.

[르포] '뭇값 폭락'에 갈아엎고 폐기하고…농민들 "죽고 싶은 심정"
40년 넘게 농산물을 운송해 온 서모(58)씨는 "원래대로라면 다 내다 파는 무들인데 워낙 뭇값이 낮고 안 팔리니까 이모작도 포기하고, 내년에 농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아예 출하조차 시도하지 못한 농가도 수두룩했다.

한 무밭에서는 농민들이 멀쩡한 무밭을 예초기로 갈아버리고 있었다.

출하하는 데 드는 인건비, 운송비, 포장비 등을 생각하면 아예 산지 폐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다.

농민들은 뭇값 폭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과잉 생산'과 '봄 무 저장량 과다'를 지목했다.

올해 봄 남쪽에서 나온 무가 다량으로 저온 창고에 들어가면서 이를 소진하려다 보니 시장에 무가 넘쳐나면서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농민들이 나름 튼실하다고 판단해 시장에 내놓은 무도 경매 결과에 따라 상급 기준 한상자(20㎏)에 7천∼8천원 선에 거래돼 지난해 3분의 1에 불과하다.

중품이나 하품은 3천∼4천원에 불과해 유통비만 겨우 건지거나 밑지고 팔아야 한다.

[르포] '뭇값 폭락'에 갈아엎고 폐기하고…농민들 "죽고 싶은 심정"
뭇값 폭락으로 포전거래(밭떼기 거래)도 뚝 끊겼고, 농민들 사이에서는 산지 유통상인 몇몇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돈다.

한 농민은 "망친 농사를 생각하면 잠도 잘 오지 않는다"며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시장 가격이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진부농협에서는 급한 대로 5천만원을 들여 무밭 1만7천평 산지 폐기에 나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창 진부에 이어 대관령, 강릉 안반데기 등 다음 출하 지역까지 피해가 고스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부지역 무 재배면적이 130만평에 달하는 점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이주한 진부농협 조합장은 "남쪽에서 생산한 무를 비축하면서 이런 사달이 났다"며 "산지 유통상인과 농민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르포] '뭇값 폭락'에 갈아엎고 폐기하고…농민들 "죽고 싶은 심정"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