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들이 ‘보는 것’을 넘어 ‘체험’하는 생활문화를 전시장에 끌어들이고 있다. 환경, 애니메이션, 디자인, 고령화, 첨단기술, 동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미술과 접목한 전시를 선보이는가 하면 무용가가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일상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미술을 보여주며 어렵고 딱딱한 시각 예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30일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을 찾은 한 관람객이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동물, 예술로 허그’전에 출품된 미디어아티스트 김창겸의 영상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30일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을 찾은 한 관람객이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동물, 예술로 허그’전에 출품된 미디어아티스트 김창겸의 영상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멸종 위기 동물 다룬 미술

사비나미술관은 환경과 생태에 관한 담론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였다. 기획전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동물, 예술로 허그(HUG)’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100만 종에 달하는 동식물이 수십 년 안에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데 착안했다. 사진작가 고상우, 미디어아티스트 김창겸, 미국 작가 러스 로냇이 국립생태원에서 자료를 받아 연구원의 조언을 들은 뒤 토론을 거쳐 완성한 작품 20여 점을 내보인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예술만이 갖는 오감작용을 통해 사회 생활 이슈에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 미술관의 오랜 역할”이라며 “작가들은 작품 홍보와 판매 촉진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어 이런 전시는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미술관 기획전 ‘안 봐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전시’의 화두는 생활과 예술이다. 몰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예술이 역설적으로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생활에서 숨 쉬는 예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황선태, 유고 나카무라, 요시유키 오쿠야마, 드롤, 김혜진, 정다운 등 국내외 작가 21팀이 참여했다. 전시장을 아침·낮·저녁·새벽 4개 공간으로 꾸며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하루 24시간 속에서 어떤 예술과 마주쳤고, 소소한 일상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일깨워준다.

무용과 미술을 접목한 전시회도 등장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안은미래’전이다. ‘빡빡머리 무용가’ 안은미의 무용 인생 30년을 결산하는 자리다. 의상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안씨는 직접 디자인한 무용복들을 전시장 천장에 걸어놓고, 우물을 형상화한 흰 구조물 여섯 군데에 영상물을 설치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어 다음달 28일부터 우리 사회 고령화 문제를 현대미술 관점으로 해석한 기획전 ‘에이징 월드’를 시작한다.

여름철 맞아 다양한 기획전 눈길

여름 휴가철을 맞아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만한 기획전과 다양한 이벤트도 잇달아 펼쳐진다.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MMM전시장에 차려진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은 앤에게서 영감받은 젊은 작가들이 일러스트, 설치 작품 등 226점을 펼쳐 보인다. 앤의 상상력과 낭만성,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삶이 현대 여성들에게 묘한 울림을 준다. 부산문화회관에 마련된 ‘빛의 화가들’전도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폴 세잔 등 인상파 작가 작품을 첨단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했다. 원화에 최대한 근접한 디지털 이미지 작업을 통해 작품 수량의 한계를 허물고,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책 작가로 유명한 영국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전은 오는 9월 8일까지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의 초기 아이디어 북과 함께 기발한 상상력이 넘치는 원화와 영상, 미디어 아트 등 200여 점이 동화와 예술의 관계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별전’은 100여 년의 디즈니 스튜디오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전시로 눈길을 끈다. 핀란드 현대미술과 디자인을 집약한 부산시립미술관의 ‘피니시 알토’전도 생활미술을 접목한 전시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는 다음달 2~4일 전국 주요 사립미술관에서 ‘올여름, 여기 어때? #미술관으로-떠나자!’라는 주제로 다채로운 체험 행사를 연다. 미술 전문가들은 “미술관들이 현대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활력을 보여주는 기획전으로 관람객 유치에 승부를 걸고 있다”며 “관람객들에게 문화 감성을 키워주고, 시각 예술의 참맛을 향유하고 체험할 수 있는 ‘대중 놀이터’로 바뀌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