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 톰 요크 첫 단독 내한공연

가장 열렬한 환호는 마지막 조명이 꺼진 뒤 터져 나왔다.

무대 앞 스탠딩석을 꽉 채운 2천여 명의 팬이 떼를 쓰듯 외치는 앙코르 요청에 톰 요크(Thom Yorke·52)가 어두운 무대를 가로질러 전자파아노 앞에 다시 앉자,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일면서 자리를 뜨던 관객들을 불러세웠다.

피아노 연주에 특유의 음울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부른 마지막 곡은 '서스피리움(Suspirium)'.
최근 톰 요크를 영화 음악감독으로 데뷔시킨 공포영화 '서스페리아'에 삽입된 피아노 발라드곡으로, 20여년 전 세기말적 우울감을 탁월하게 표현한 명곡 '크립(Creep)', '패러노이드 안드로이드('Paranoid Android)' '노 서프라이지즈'(No Surprises) 같은 라디오헤드(Radioghead)의 초기 곡들에 대한 향수를 자아냈다.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리드보컬인 톰 요크가 28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펼친 단독 내한공연은, 라디오헤드의 오랜 팬들에겐 낯설게 느껴질 만큼 전위적인 색채가 강한 전자 사운드와 빛의 향연이었다.

강렬한 전자음과 황홀한 빛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
쉼 없이 이어지는 강렬한 전자음에 간간이 스며드는 기타 사운드는 심장을 두드리고 뇌를 때리는 듯했고, 무대 전면 대형 스크린 위에 레이저로 쉴새 없이 그리는 기하학적 영상은 눈을 떼기 어려웠다.

중독성 있는 전자음과 현란한 빛들이 연출하는 몽환적인 분위기.
그 속에서 꽁지머리에 검은색 티셔츠와 바지, 흰색 운동화 차림 톰 요크는 빙빙 돌고 뛰고 흐느적거렸다.

그의 춤은 흥에 겨운 어린아이의 순진한 몸짓 같기도, 신기 오른 무당의 굿 같기도 하고, 행위예술가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노트북과 장비들이 놓인 3개 데스크와 전자피아노로 미니멀하게 꾸민 무대 위에 연주자는 세 명뿐이었다.

그중 한 명인 톰 요크는 바쁘게 움직이며 춤추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무대를 조율했다.

강렬한 전자음과 황홀한 빛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
120여분간 이어진 공연에선 '인터피어런스(Interference)' '임파서블 노츠(Impossible Knots)' '블랙 스완(Black Swan)' 등 톰 요크가 라디오헤드 활동과 솔로 활동을 병행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낸 3장의 솔로 앨범에 실은 곡들을 위주로 21곡을 선보였다.

특히 솔로 3집 '아니마(ANIMA)'에 담긴 신곡 9곡 가운데 '아이 엠 어 베리 루드 퍼슨(I Am a Very Rude Person)' '낫 더 뉴스(Not the News)' '트래픽(Traffic) 등 7곡을 들려줬다.

영화 '서스피리아' 삽입곡 '해즈 엔디드(Has Ended)'와 톰 요크가 솔로 활동을 하면서 참여한 프로젝트 밴드 '아톰스 포 피스(Atoms For Peace)' 앨범에 담긴 '어마크(Amok)'와 '디폴트(Default)'도 셋리스트(공연곡 목록)에 포함됐다.

곡들은 강렬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가 주조를 이뤘다.

이는 올해 발매한 솔로 3집 주제인 불안과 디스토피아와 맥을 같이한다.

강렬한 전자음과 황홀한 빛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
톰 요크는 최근 영국 음악문화잡지 '크랙 매거진(Crack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나에게 가장 두렵고 지배적인 감정은 불안감"이라며 "불안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 디스토피아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암울한 주제의 음악에 맞춰 추는 춤에 대해선 "내 음악은 정말 정말 어둡고 무겁다.

(그렇다고) 마냥 시커멓게 서 있으면서 무게를 재야 하나? 난 춤을 출 거다"라고 했다.

공연에선 이 같은 아이러니와 낯선 전자음이 만드는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들은 공연장을 들썩이게 하는 강렬한 비트의 사운드에도 선뜻 몸을 맡기지 못하다 공연이 무르익으면서 머리를 흔들고 어깨를 들썩이며 긴장을 푸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공연 직전 쏟아진 폭우에도 3천600여명 팬이 공연장을 찾았다.

톰 요크와 멤버들은 공연을 마친 뒤 환호하는 팬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강렬한 전자음과 황홀한 빛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
지난해 북미를 시작으로 유럽, 아시아로 이어진 톰 요크의 솔로 투어 대미를 장식한 이번 공연은 라디오헤드의 오랜 조력자인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와 비주얼 아티스트 타릭 바리가 함께했다.

톰 요크가 한국을 찾기는 2012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무대에서 펼친 라디오헤드 공연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공연은 그의 첫 단독 내한공연이다.

라디오헤드는 1985년 영국 옥스퍼드셔주 애빙턴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톰 요크와 4명의 친구가 결성한 밴드로, 1992년 발매한 첫 싱글 '크립'으로 세계적인 록밴드로 부상했다.

라디오헤드는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와 섬세한 서정성, 실험성이 돋보이는 곡들로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찬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기성 체제에 안주하며 상업화해 가는 록 음악의 대안으로 등장한 얼터너티브록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올 초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공연은 30년 가까이 라디오헤드를 이끈 톰 요크의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살아있는 실험정신의 현주소를 보여준 듯하다.

한 관객은 공연이 끝난 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강렬한 전자음과 황홀한 빛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
강렬한 전자음과 황홀한 빛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