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역사 왜곡 논란 속 흥행 부진
'사자' '엑시트' '봉오동전투' 삼파전
올여름 1천만 한국영화 나올까…10·20대 입소문이 관건
올여름 극장가도 '한국영화 놀이터'가 될 수 있을까.

한국영화는 해마다 1천만 영화를 배출하며 여름 시장을 주도해왔다.

올해는 최성수기인 7월 말·8월 초에 접어들었지만, 섣불리 결과를 점치기 어렵다.

제일 먼저 포문을 연 '나랏말싸미'가 돌발 변수로 흥행 탄력을 받지 못한 탓이다.

이제 여름 대전은 '사자'와 '엑시트', '봉오동 전투' 삼파전으로 압축됐다.

모두 제작비 100억원 이상 들어간 고예산 영화여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올여름 1천만 한국영화 나올까…10·20대 입소문이 관건
◇ 역사 왜곡 논란에 발목 잡힌 '나랏말싸미'
2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나랏말싸미'는 전날 약 20만명을 불러모아 '라이온킹'(35만8천명)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총제작비 130억원이 투입된 이 영화는 나흘간 총 59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이날 오전 7시 현재 실시간 예매율은 6위로 밀려나 손익분기점(350만명)을 넘길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역사 왜곡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이 작품은 세종이 직접 한글을 만들었다는 정설 대신, 승려 신미가 한글 창제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가설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축했다.

영화 서두에 가설임을 밝혔지만, 관객은 가설이 아니라 역사 왜곡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세종의 업적을 폄훼했다"는 분노 섞인 반응도 나왔다.

올여름 1천만 한국영화 나올까…10·20대 입소문이 관건
사극과 허구를 결합한 '팩션 사극'은 한국영화의 단골 장르다.

그러나 모든 영화가 역사 왜곡 논란에 시달린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은 15일을 다룬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관객 호응 속에 1천230만명을 동원했고, 조선 20대 왕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게 한 임오화변을 다룬 '사도'(2014)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

다만,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군함도'(2017)와 '덕혜옹주'(2016)는 역사 왜곡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군함도'는 659만명이 봤고 '덕혜옹주'는 560만명을 불러모았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세종은 국가적으로 자랑스러운 발명품인 한글을 만든 범접불가 위인으로 상징성이 큰 인물인 데다, 한글 창제에 영향을 준 사람이 종교적 색채를 띤 스님이라는 점이 복합적인 불편함을 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팩트에 기반해 빈 곳을 채우면 해석이지만, 팩트 자체를 바꾸면 왜곡"이라며 "한글 창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인데,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주도적으로 만든 것처럼 그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존 인물을 내세울 경우 팩트는 그대로 유지하되, 주변 인물과 여백의 공간에서 상상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자체가 외적 논란을 뛰어넘을 만한 극적 재미를 주지 못한 점도 흥행 부진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올여름 1천만 한국영화 나올까…10·20대 입소문이 관건
◇ '사자' '엑시트' '봉오동 전투' 삼파전…1천만 영화 타이틀은 어디로
이제 시선은 남은 한국 영화 3편에 쏠린다.

각각 장단점이 뚜렷하다.

'사자'는 대세 배우 박서준을 기용하고, 악령을 쫓는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오컬트 장르라는 점에서 젊은 층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편이어서 개봉 초기에 얼마나 많은 관객을 모으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정석·윤아 주연 '엑시트'의 경우 배우 인지도는 3편 중 가장 낮은 편이다.

그러나 시사회 이후 '재미있다'는 호평이 쏟아져 입소문을 타고 롱런이 점쳐진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이 승리한 전투를 다룬 류준열·유해진 주연 '봉오동 전투'는 아직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그럭저럭 갖췄다면, 최근 확산한 '반일감정'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올여름 1천만 한국영화 나올까…10·20대 입소문이 관건
올여름 시장은 10~20대 관객의 입소문이 더욱 중요해졌다.

6월에는 '기생충'과 '알라딘' 성공에서 보듯 중장년층이 극장가를 이끌었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우리나라 관객은 통상 여름에 1~2편을 본다"면서 "40~50대들이 6월에 이미 영화를 봤기 때문에 7~8월에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관객들의 선택이 흥행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여름 1천만 한국영화 나올까…10·20대 입소문이 관건
◇ 여름마다 3~4편씩 쏟아지는 한국영화, 차별화·브랜딩 전략 필요
매해 여름에는 3~4편의 한국 영화 대작이 개봉해 희비가 엇갈렸다.

2016년에는 '부산행'이 '인천상륙작전'(705만명), '덕혜옹주'(560만명), '터널(712만명)을 제치고 1천만 고지를 밟았다.

2017년에는 '택시운전사'(1천219만명)가 여름 대전에서 승리했다.

'청년경찰'(565만명)도 틈새시장에서 선전했다.

지난해에는 '신과함께-인과연'(1천228만명)이 흥행 돌풍의 주역이었다.

반면, 제작비 200억원이 넘게 들어간 '인랑'은 90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강유정 평론가는 "성수기라지만 한국 영화 4편은 너무 많다.

디즈니 영화가 연착륙한 상황에서 관객들은 한국영화 4편 가운데 한편만을 골라 볼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한국영화의 브랜딩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오락 영화로서 디즈니, 마블 영화 성장세가 급격한데도 한국의 텐트폴 영화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라며 "자칫 국내시장이 외국 프랜차이즈 영화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제작사 대표도 "작년 추석 시장처럼 한국 영화가 동시에 쏟아져 제 몫을 해내지 못할까 걱정"이라며 "큰돈을 들인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 전반적으로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