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 바로 앞에 두고 19명 숨져…유독가스로 의식 잃은 듯

지난 18일 방화로 발생한 일본 교토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화재 때 69명의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인명피해가 컸던 것은 폭연현상과 연돌효과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34명, 중태 9명을 포함한 부상 35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증 부상자 중에는 교토애니메이션 직원인 한국 국적 여성(35)도 한 명 포함돼 있다.

화재 당시 건물에 있던 74명 중 5명만 무사히 빠져나왔다.
'교토애니' 화재 인명피해 키운 '폭연현상 & 연돌효과'
사이타마(埼玉)현에서 홀로 살아온 범인 아오바 신지(靑葉眞司·41)는 범행 당일 오전 10시 30분께 교토시 후시미(伏見)구 주택가에 있는 3층짜리 스튜디오 건물 1층으로 들어가 40ℓ가량의 휘발유를 마구 뿌린 뒤 불을 붙였다.

이 화재로 1층에서 3명, 2층에서 12명, 3층에서 19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불이 난 건물은 2007년 연면적 690㎡ 규모로 신축된 철골구조로, 1층 현관 입구 쪽에 3층까지 오르내리는 나선형 계단이 설치돼 있었다.

범인이 불을 붙인 곳은 바로 나선형 계단 부근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에서 인명피해가 커진 것은 휘발성이 높은 물질이 연소할 때 폭발적으로 불길이 확산하는 폭연(爆燃) 현상이 일차적 원인이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폭연 현상으로 발생한 열 폭풍이 창문을 깨뜨리고, 깨진 창문을 통해 유입된 공기는 다시 불길을 키웠다는 것이다.

여기에 건물 내부에서 1~3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이 연돌(굴뚝) 효과를 내면서 화염과 유독 가스를 순식간에 퍼뜨려 제대로 대피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3층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폭 1.2m의 계단에서 가장 많은 19명이 뒤엉키어 숨진 채 발견됐는데, 이들은 대피 중 급속히 퍼진 유독가스를 마시고 옥상으로 탈출하기 직전에 의식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옥상 문은 안에서 손쉽게 열 수 있었지만 닫힌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교토시는 나선형 계단이 화재 피해를 키우는 요인으로 분석됨에 따라 나선형 계단을 갖춘 건물의 안전실태를 일제히 조사하기로 했다.

니이 다이사쿠 교토대대학원 조교(건축화재안전공학)는 "이번 화재에서는 국소적인 불이 급격히 확산하는 '플래시오버' 현상이 더해진 것 같다"며 "스튜디오에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쓰이는 종이류 등 가연성 물질이 많은 환경이어서 피해를 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애니' 화재 인명피해 키운 '폭연현상 & 연돌효과'
한편 일본에서는 이번 화재 참사를 계기로 소방법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소방법은 사다리 등 피난 기구 설치를 강제하는 건물은 3층 이상으로 창문 수가 적은 경우로 국한된다.

또 스프링클러는 11층 이상이거나 창문이 없는 경우에만 설치토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토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이런 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비상계단 설치는 건축기준법상 건물 규모에 따라 설치토록 하고 있는데, 교토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건물은 규모가 작아 역시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야타 히데아키 도쿄애니메이션 사장은 "건물을 지을 때 비상계단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 철천지한"이라고 뒤늦게 후회했다.

한편 일본 경찰은 범행 후 달아났다가 인근에서 검거된 아오바의 화상이 심해 범행 동기를 캐는 조사는 못하고 있다.

사이타마의 한 아파트에 거주지를 둔 아오바는 소음 문제 등으로 이웃 주민과 자주 싸웠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아오바는 범행동기로 "(교도애니메이션이) 소설을 훔쳤기(표절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이 회사에서 일을 했거나 소설책을 내는 등 작가로 활동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경찰은 아오바가 일방적으로 원한을 품고 저지른 분노형 범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범인 주변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