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 시한인 18일이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거부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일본의 추가적인 경제보복 조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종에 대한 2차 보복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경DB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 시한인 18일이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거부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일본의 추가적인 경제보복 조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종에 대한 2차 보복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경DB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 시한이 다가오면서 일본의 '2차 경제보복'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와 부품이 또 한 번 타깃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웨이퍼·블랭크마스크·섀도마스크 등이 후보군으로 지목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측이 제시한 중재위 구성 시한은 이날 오후 12시까지지만 우리 정부는 이미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대로라면 반도체 업종에 대한 2차 보복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중재위 설치 거부를 빌미로 추가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 31일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해 전략물자 수출규제를 강화하기에 앞서 경제적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 23일로 예정된 세계무역기구(WTO) 일반 이사회를 앞두고 일본 정부가 자국 내 보수층 결집을 위해 '한국 때리기' 강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관방부 부장관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중재위 구성을 요구한 것에 대해 한국 정부는 협정에 따라 18일까지 응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우리 정부도 3국 중재위 요청 시한인 이날과 21일 참의원 선거, 화이트리스트 관련 의견 수렴이 마무리되는 24일 전후로 아베 정부가 2차 보복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일본 측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가 2차 경제보복 조치 품목에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쓰는 일본산 소재 비중이 높아서다.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웨이퍼, 블랭크마스크 등의 수출 규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도체 소재 중 가장 많이 필요한 웨이퍼는 일본이 세계 시장의 60%를 점유한 분야다. 블랭크마스크는 반도체 노광공정의 핵심 재료인 포토마스크의 원재료가 되는 품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수출규제 조치가 웨이퍼나 블랭크마스크까지 확대되면 진짜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일부 공정이 아예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웨이퍼는 일본 섬코, 신에츠화학 등의 기업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 기업인 SK실트론, 대만 글로벌웨이퍼스도 웨이퍼를 생산하지만 이들 제품은 일본산보다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블랭크마스크는 삼성전자 내 비중 60%를 웃돌고 극자외선(EUV) 블랭크마스크는 일본 호야가 독점 생산 중"이라며 "때문에 웨이퍼와 블랭크마스크가 수출규제 항목에 포함된다면 문제가 생긴다"고 짚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선 일본이 거의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섀도마스크가 수출규제 품목에 포함되면 큰일이라는 분위기. 섀도마스크는 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증착 공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소재로 일본이 세계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섀도마스크는 미세한 구멍이 뚫린 얇은 철판으로 구멍 크기와 간격이 일정해야 고품질로 분류된다. 디스플레이 증착 공정이 수백도 고온에서 이뤄지므로 변형도 없어야 한다. 앞서 일본이 1차 수출규제 항목에 포함시킨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은 일본 의존도가 높지만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진 않는다. 반면 섀도마스크는 100% 일본에서 수입하는 품목이다.

국내에선 웨이브일렉트로닉스 등이 일부 섀도마스크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양산에 성공하진 못했다. 일본이 섀도마스크를 수출규제 품목에 넣으면 중국 업체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삼성·LG디스플레이는 직격탄을 맞는다.

최근 일본이 한국 수출규제 품목에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포함시키자 애플은 사실상 삼성디스플레이가 점하던 OLED 패널을 중국 BOE로 돌리는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TV 등을 만드는 가전업계도 일본산 부품과 소재를 많이 수입해 이들 품목이 2차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삼성전자는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10 시리즈에 일본 무라타의 와이파이·블루투스 모듈을 탑재했다. 무라타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부터 배터리까지 생산하는 일본 최대 전자부품 기업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도 대부분 일본산 소재를 쓴다. 양극재는 일본 니치아화학공업터, 음극재는 미쓰비시화학 제품을 주로 쓴다. 일본은 글로벌 2차 전지용 음극재 시장도 장악(점유율 약 90%)하고 있다. 특히 핵심 소재로 꼽히는 배터리 분리막은 거의 전량 일본 아사히가세이와 도레이에서 수입한다.

TV 역시 피해가기 어렵다. 삼성·LG전자 액정표시장치(LCD) TV의 핵심 소재인 'TAC 필름'은 일본 후지필름에서 수입한다. 일본은 전세계 TAC 필름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3일 스마트폰과 TV 부문 경영진에게 일본이 수출 규제를 확대할 경우를 대비해 비상계획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