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일 “문 대통령이 수출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등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의례적인 행사와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모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담회가 급하게 잡힌 점을 고려할 때 일본의 보복조치로 충격에 빠진 산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정부 대응방안을 공유하는 자리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대화는 지난 1월 15일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에게 국내 수출기업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만나 의견을 듣고 대응책에 반영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 "지금은 비상한 대응 필요, 기업과 긴밀 협조"…日 보복 대책 모색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0일 30대 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것은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에 대해 총수들을 직접 만나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130여 명이 참석한 지난 1월의 기업인 간담회와 달리 참석자를 30대 그룹으로 제한한 것도 구체적인 대화를 하겠다는 의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일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 문 대통령이 세 가지 대응 원칙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대응하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으니 경제논리로 대응하라는 주문과 함께 피해를 볼 수 있는 기업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5대 그룹 임원들을 잇따라 만난 것도 이런 배경으로 분석된다. 김 실장은 7일 5대 그룹 총수와 별도로 만날 예정이다. 다만 갑작스러운 통보로 해외 출장 중인 일부 총수는 참석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우리 기업들의 부품 소재 분야 대일 의존도를 낮출 방안도 강구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청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내년부터 핵심 전자부품 소재 분야에 매년 1조원씩을 투자해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장 6월 임시국회 추경안에 반영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글로벌 부품 체인망 가운데 전자부품 소재 분야는 일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편”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핵심 원료와 소재는 기술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는 일본의 부품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긴급간담회 성격이다. 청와대는 이날 행사를 확정한 뒤 재계에 참석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이 지난달 21일 부임한 뒤 재계와 소통을 강화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나 문 대통령의 초청 행사는 당초 일정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를 ‘보복적 성격’이라고 규정하고 대응 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만큼 문 대통령이 이번 간담회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지금은 비상한 대응이 요구된다. 기업들과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이날 간담회가 혁신성장 등 재계가 바라는 정책 방향에 관해서도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7개월째 감소세를 보인 수출 등 경기지표 악화를 막기 위한 기업투자 활성화 방안 등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의례적인 보여주기식 자리가 아니라 기업인들과 경제 산업 현안을 놓고 심도 있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별도로 전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의 만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노 실장은 2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이날 만찬 도중 합류해 약 한 시간 동안 이 부회장, 정의선 현내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이해진 네이버글로벌투자책임자(GIO),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과 대화를 나눴다.
청와대 관계자는 “손 회장과 우리 기업 총수들에게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한 의견을 듣기 위해 만찬 도중 들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손 회장은 간담회 후 ‘일본 규제와 관련한 조언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그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노 실장이 청와대에서 핵심 산업정책을 직접 챙겨온 만큼 일본의 수출 규제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맡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노 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핵심 3대 신성장 산업으로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미래자동차를 선정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또 다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관련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만나 현장의 의견을 듣고 대응책에 반영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며 “지금은 정부와 기업이 기민하게 협력해서 대응해야 하는 시기라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