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tvN에서 첫 방영한 정치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CJ ENM 제공
지난 1일 tvN에서 첫 방영한 정치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CJ ENM 제공
뉴스가 아니라 드라마에서 이렇게 국회를 자주 본 적이 있었을까. 지난달 14일부터 방영되고 있는 JTBC의 ‘보좌관’은 국회의원 보좌관 장태준(이정재 분)의 시선을 따라 국회 곳곳을 훑는다. 각 의원실 구석구석에 파고든 욕망, 이로 인해 얽히고설킨 이권 관계를 드러낸다. 지난 1일 첫 방영된 tvN ‘60일, 지정생존자’는 더 파격적인 방식으로 국회를 보여준다. 테러로 국회의사당이 폭파된다. 대통령이 사망하고, 환경부 장관 박무진(지진희 분)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두 편 모두 방영될 때마다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 등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정치 혐오가 극대화되고 있는 요즘, 어찌 된 일인지 정치 드라마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KBS ‘국민 여러분’이 스타트를 끊었고, 하반기엔 tvN ‘위대한 쇼’도 나온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일시적 현상일까. 이를 감안해도 몇 년에 한 편 방영될까 말까 한 비인기 장르인 정치물이 네 편이나 나온다는 건 분명 이례적이다. 이 자체가 새로운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싶다. 여기엔 다소 허탈함이 밀려올지언정 정치 혐오를 극복하게 해줄 통쾌한 한방을 갈구하는 대중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제작자들은 현실 정치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이 한방을 안겨줄 서사를 분주히 찾아나섰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정치 드라마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정치가 드라마 소재가 되기에 부족한 건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 ‘하우스 오브 카드’ 등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시즌을 거듭하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반면 한국에서 정치는 정치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 드라마 안에서 작동했다. 주로 사극에서 조선시대 왕과 신하들의 권력 다툼 정도로 다뤄졌다. 대표적 정치 드라마로 기억되는 2005년 MBC의 ‘제5공화국’도 1980년대 역사 드라마에 가깝다. 오랜 시간 알게 모르게 작동한 검열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특정 정치인을 연상하게 하는 대사나 설정이 있어서도 안 됐고, 자유로운 상상과 표현이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결국 박제된 과거 정치를 복기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동시대 정치를 그린 드라마로는 2009년 ‘시티홀’, 2010년 ‘대물’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일종의 판타지에 가까웠다. 기성 정치에 전혀 물들지 않은 이상적인 캐릭터를 내세웠다. ‘동시대’이지만 ‘현실’과는 최대한 간극을 둬 대중의 정치 혐오를 피해가려 했다. 그래서인지 정치 드라마로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진 못했다. 한참 뒤인 2015년에 방영된 KBS ‘어셈블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정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을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 드라마에서는 재미있는 시도가 더해지고 있다. ‘보좌관’은 국회의원의 뒤에서 전략을 짜고 실무를 담당하는 보좌관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국민 여러분’은 사기꾼의 국회의원 출마기를 다뤘으며, ‘위대한 쇼’는 전(前) 국회의원이 국회 재입성을 위해 쇼를 벌이는 얘기를 담는다. 어떤 사유도, 상상력도 멈춰버린 듯한 현실 정치와 달리 드라마 속 정치는 새로움을 더하며 발전하고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돈은 10년이 지나면 무너지는 대저택과 같지. 권력이야말로 수세기를 버티는 단단한 석조 건물이야.” 그래서인지 강력하고 견고한 권력을 쥐려는 욕망은 끝이 없다. 대중은 그 욕망에 때론 넌더리를 내며 멀어지려 한다. ‘빠루(쇠 지렛대)’ 등이 등장한 ‘동물 국회’를 보며,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정쟁을 보며 머리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권력 의지가 곧 세상을 발전시키는 힘이 되기도,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정치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그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지 않을까.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