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탐사보도기자편집자협회 선정 올해 '황금자물쇠상'

"올해 황금자물쇠상의 영예는 미시간 주립대가 안았습니다.

"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2019년 미국 탐사보도 기자·편집자 협회(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IRE) 총회에서 수상자로 미시간 주립대(Michigan State University·MSU)가 호명되자 참석자들은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수상자로 선정된 MSU 관계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금자물쇠상'(Golden Padlock Award)을 받는 '명예'는 사실은 불명예이기 때문이다.

◇ '황금자물쇠상' 선정 기준
이 상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한 미국 연방 및 지방 정부기관·공공기관·공직자에게 주어진다.

쇠사슬이 달린 자물쇠가 상의 이름이자 상징이다.

온갖 꼼수를 동원해 정보를 꽁꽁 싸매고 잠가서 공중(公衆)의 알 권리와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방해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IRE는 2013년부터 매년 5∼6명의 언론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이 상의 수상자를 결정해 왔다.

MSU는 성폭력 추문을 은폐하려고 온갖 꼼수를 부린 점을 인정받아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대학은 2016년 9월 첫 폭로가 이뤄진 후 지금까지 미국 체조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Me Too) 파문의 진원지였다.

◇ 성추문 감추려 명단 공개 거부
MSU 스포츠의학 클리닉의 전문의였으며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 전담 의사였던 래리 나사르(Larry Nassar·1963년생)는 트레이너와 의사로 활동해 온 30여년간 자신이 관리와 훈련을 맡은 체조선수 등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나 작년에 주법원에서 단기 40년, 장기 17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에서 증언하거나 진술서를 제출한 여성 피해자는 156명에 이르렀다.

나사르는 이에 앞서 재작년에 아동포르노 소지와 증거인멸 혐의로 연방법원에서 징역 60년을 선고받아 복역중이었으므로, 10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MSU는 나사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왜곡·은폐하려 했을 뿐 아니라 다른 성추문 사건들에 연루된 교직원과 체육 특기생들과 관련된 정보도 감추려고 했다고 IRE 황금자물쇠상 심사위원장인 로버트 크립(Robert Cribb) 토론토 스타 기자는 설명했다.

MSU는 이 대학 학장, 부총장, 운동부 간부직원 등 고위 관계자 38명이 성관련 비위 등으로 내사를 받았는지 여부를 알려 달라는 지역 일간지의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했다.

이 대학은 또 자교 체육 특기생들의 입건 기록에 대해 캠퍼스 경찰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스포츠전문매체 ESPN과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 '근무시간 딴짓' 들키자 증거인멸 시도
올해 IRE 개최지인 텍사스주 휴스턴의 정부·공공기관과 공직자들이 후보에 오른 '황금자물쇠상 지역부문'은 실베스터 터너 휴스턴 시장의 전(前) 공보비서관인 대리언 워드(Darian Ward)에게 돌아갔다.

IRE의 수상자 선정 이유에 따르면, 워드는 근무시간에 본업은 제대로 하지 않고 사적인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등 근무를 태만히 해 왔으며, 이 사실이 들킬 위기에 처하자 이메일 등 관련 기록을 삭제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도했다.

워드의 비위는 공보비서관인 그가 기자의 전화 문의에 콜백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점을 수상하게 여긴 지역방송 기자의 추적보도로 드러났다.

그는 비위 보도 후 직무정지를 당한 후 사표를 냈으며, 법원에서 혐의를 인정한 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은폐의 창의적 달인들"
수상자 선정에 앞서 발표된 최종후보들 명단에는 거대 온라인 기업 아마존을 유치하면서 작성한 비밀계약 내용의 공개를 거부한 뉴욕 시 당국 등 모두 7개 기관과 공직자가 이름을 올렸다.

크립 심사위원장은 올해 수상자들과 수상 후보자들이 "영향력이 큰 회사와 정치인들을 공공의 감시로부터 보호하고, 납세자가 낸 수백만 달러 단위 돈의 사용처를 숨기고, 심각한 범죄를 비밀로 감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이 "정보 은폐의 창의적 달인들"이라며 "자신들이 섬기는 주민들에게 명확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온갖 기술과 기지와 끈기를 발휘했으며,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익을 저버리고 사익에 헌신하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정보공개의 중요성
IRE가 한 해 동안 미국 언론의 탐사보도 성과를 평가하고 이에 큰 기여를 한 언론인들에게 상을 주는 연례총회에서 '황금자물쇠상'을 시상하는 것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1967년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을 제정하는 등 공공정보 공개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미국에서도 다양한 핑계를 대며 정보를 은폐하려는 공공기관과 언론사가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여전히 드물지 않다.

소송전과 여론전이 함께 벌어지기도 한다.

플로리다주의 지역 종합일간지 사우스 플로리다 선 센티넬(South Florida Sun Sentinel)은 지난해 2월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에서 17명의 사망자를 낸 마저리 스톤먼 더글라스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연속 보도로 올해 퓰리처상 공공기여부문상을 수상했다.

이 신문은 경찰과 학교 당국의 현장 대응과 구호인력 투입이 소극적이거나 부적절해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점과 함께, 이들이 사건 발생 전에 총기난사범에 대한 단서를 포착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는 사실을 밝혀내 보도했다.

이 신문의 줄리 앤더슨 편집인은 20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탐사보도 디플로마 프로그램 연수차 마이애미 본사를 방문한 한국 기자들을 만나 "공무원 중에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아 사건을 덮으려는 사람도 있었다"며 "정보공개 청구 제도가 있음에도 (취재에)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기까지는 계속 싸워야 했다"고 취재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설명했다.

어느 나라건, 법원이 반드시 '알 권리' 편을 들어 준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보도 과정에서 선 센티넬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아낸 정보를 기사화했다가 법원 판사로부터 경고를 받은 적도 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선 센티넬의 입장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미성년자 수십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헤지펀드 매니저 제프리 엡스타인의사건을 1년간 추적해 보도한 마이애미 헤럴드(Miami Herald)는 정보공개 청구를 놓고 법원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신문은 엡스타인 본인의 범죄뿐만 아니라 2008년에 플로리다 남부 연방검사장으로 엡스타인의 성매매 사건을 담당했던 알렉산더 아코스타 현(現) 미국 연방정부 노동부 장관에 대해 '봐주기 의혹'도 제기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18일 마이애미 헤럴드 본사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케이시 프랭크 탐사보도부장은 "10여년 전 사건이어서 엡스타인이 정확히 어떤 짓을 했고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를 알아내는 게 제일 어려웠다"며 "법원이 많은 관련 기록에 관한 접근을 막았기 때문에 뉴욕과 마이애미에서 직접 법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KPF 디플로마-탐사보도 과정에 참여 후 작성됐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