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심보선, 장석주, 문태준
왼쪽부터 심보선, 장석주, 문태준
심보선, 문태준, 장석주 등 중견 시인 3인이 최근 산문집을 잇따라 출간했다. 각자 다른 문체와 글감, 주제의식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글들이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김훈의 《연필로 쓰기》 등 올 상반기 서점가에 불었던 ‘소설가 에세이 바람’이 시인들의 에세이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심보선 시인이 등단 25년 만에 처음 낸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문학동네)는 2007년부터 최근까지 그가 겪은 삶과 사람, 일상의 관계에 대해 쓴 짧은 글 77편을 엮었다. 시인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는 영혼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상황에서 답을 얻었다고 털어놓는다. “일 안 나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뭐하는 짓인지 알아? 이건 영혼을 낭비하는 짓이야!” 현장소장과 시비가 붙어 막노동 일을 나가지 않는 남편에게 식당 아주머니는 야단치듯 소리친다. 시인은 아주머니 입에서 나온 ‘영혼’이란 말의 울림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식당 일이나 예술이나 막노동이나 모두 영혼의 문제”라며 “영혼은 추상적이거나 종교적인 어구가 아니라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태도들 사이에서, 몸짓과 말투 속에서 모종의 신호로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모종의 신호’는 “강박과 예속에 대해 매 순간 저항하게 하고, 망설이게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색하게” 하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의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민음사)는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인문 에세이다. 책은 시인이자 인문학 저술가로서 격동의 시대를 산 작가의 위태로웠던 삶의 기억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실존적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장 시인은 2012년 출간한 《일상의 인문학》에 이어 신작에서도 먼 미래보다 일상을 사유하고 더 나은 하루에 집중한다. 전구가 등장하면서 인간이 밤을 휴식 시간이 아니라 노동 시간으로 쓰게 된 것에 대해 쓴 ‘야행성 인간’, 공항에서 몽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무거운 시간을 느끼게 했던 경험을 적은 ‘공항’ 등의 글을 통해 일상 속 사물과 공간, 현상의 밋밋함을 파고들며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의미를 치밀하게 분해했다.

문태준 시인의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마음의숲)는 그가 10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산문집이다. 시골, 자연, 계절 등 ‘삶’이라는 풍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면면을 그만의 언어적 감각으로 키워냈다. 단도직입적인 표현 대신 에둘러 말하는 ‘곡선’ 같은 문장으로 이뤄진 사색적인 글들이다. 모나지 않은 둥근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품고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우직한 삶이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다.

시인은 “나무에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눈이 쌓이면 ‘눈 쌓인 나무’가 되듯 존재 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자신의 내면에 다른 존재의 공간을 만드는 연습을 하다 보면 ‘기다림’ ‘조용함’ ‘쓸쓸함’ ‘즐거움’같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