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집권당인 자유국민연합이 예상외 깜짝 승리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총선에서 패배가 점쳐졌던 자유국민연합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호주에서는 세 차례 연속 중도우파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호주 민심이 기후변화 문제 대처, 부자 증세 등을 내세운 중도좌파 야당이 아니라 경제 우선주의를 표방한 집권 여당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호주 총선, 경제 앞세운 여당 '막판 뒤집기'…3연속 집권
호주 ABC방송에 따르면 호주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총선 개표가 80%가량 진행된 상황에서 자유국민연합이 하원 전체 151석 중 74석을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야당인 노동당은 65석을 차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성적은 그동안의 여론조사와 출구조사 결과를 뒤집은 것이어서 주목됐다. 자유국민연합은 지난 2년간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에 밀렸다. 이날 출구조사에서도 노동당에 대한 선호도(52%)가 자유국민연합(48%)을 4%포인트 앞섰다. 노동당의 총선 승리가 사실상 확실시된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개표 후반부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노동당이 자신들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동남부 빅토리아주(州)와 서부 지역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면서 여당이 승기를 잡았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대도시에선 노동당이 선전했지만, 도시 외곽이나 농촌 지역에선 자유국민연합이 승리를 거뒀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경제와 환경이 맞붙은 이번 선거에서 결국 환경이 패배했다”고 분석했다. 호주는 지난해 역대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하고 기후변화로 동·식물이 멸종위기에 처하는 등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선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주 유권자 사이에서 환경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노동당에 대한 지지세가 강했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선 경제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됐다.

호주 현지 언론은 자유국민연합의 이번 총선 승리가 스콧 모리슨 현 총리의 공이라고 입을 모았다. 작년 8월 맬컴 턴불 전 총리가 당내 보수파의 쿠데타로 실각한 뒤 자유국민연합은 계속된 내홍으로 전열이 무너진 상태에서 총선을 맞이했다. 모리슨 총리가 지난해 8월 턴불 전 총리의 뒤를 이었지만 내각을 구성하던 핵심 의원들이 불출마하거나 지역구 수성에만 매달려 총선 승리가 힘들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모리슨 총리는 기후변화 문제 해결책 등을 둘러싸고 깊어지던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경제 우선’ 정책을 통해 당 지지세를 회복했다. 모리슨 총리는 이날 승리가 확실시되자 “난 언제든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며 “오늘 밤은 호주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자축했다.

극적인 총선 승리로 자유국민연합이 집권 3기를 맞으면서 모리슨 총리의 국정 장악력도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하던 기존 외교정책 노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태평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지역 간 경제·안보 협력을 추구하는 미국의 전략에도 더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6년 동안 노동당을 이끌었던 빌 쇼튼 대표는 이날 총선 패배를 인정하며 앞으로 의원직은 유지하지만 노동당 대표직에는 더 이상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호주우선주의’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호주의 트럼프’를 꿈꿨던 광산재벌 클라이브 파머의 호주통합당은 이번 선거를 위해 6000만호주달러(약 493억원)를 쏟아부었지만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