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법인세 수입, 통영의 202배…'도시 흥망' 제조업이 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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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탈출! 新제조업이 희망이다
(2) 제조업이 도시 경쟁력 좌우
기업유치 엄청난 낙수효과 누려
조선업 직격탄 거제·군산의 비명
(2) 제조업이 도시 경쟁력 좌우
기업유치 엄청난 낙수효과 누려
조선업 직격탄 거제·군산의 비명
지난 13일 경기 이천시 고담동 ‘유산~고담 간 도시계획도로’ 건설 현장. 덤프트럭이 흙을 쏟고 가면 굴착기 등 중장비들이 달려들어 땅을 높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공사는 이천 유산리와 고담동을 가로지르는 ‘복하천’ 위로 도로를 내는 사업이다. 공사가 끝나면 유산리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시간이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이천시는 이 사업에 200억원을 쏟아부었다. 시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낸 세금이 없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사업”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이 도시의 운명을 가르고 있다. 반도체 산업 도시들은 삼성전자 등이 낸 수천억원의 세금으로 지역 인프라 확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선업 쇠락의 직격탄을 맞은 도시들은 반대 상황이다. 기업들이 세금을 못 내 중앙정부에서 내려주는 지방교부금과 보조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도로, 공원 등 기반시설 투자는 줄줄이 연기했다. 반도체 기업 덕분에 ‘세수 풍년’
반도체 공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세수 풍년’을 맞았다. 16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화성·수원·용인·평택시 등에 총 1조1064억원을, SK하이닉스는 이천·청주시 등에 5237억원의 법인지방소득세(2018년 실적분)를 냈다. 반도체 호황이 시작되기 전인 2년 전과 비교하면 각각 3.8배, 9.5배로 늘었다. 법인지방소득세는 이익을 낸 기업이 법인세 과세표준의 1.0~2.5%를 각 지역 공장 면적과 근무 인원에 따라 배분해 지자체에 내는 세금이다.
이들 지자체는 사회간접자본(SOC)에 수백억원씩 투자하며 곳간을 풀고 있다. 이천시는 도로 상하수도 등 SOC 확충에 예산의 약 40%를 투자하고 있다. 재원의 3분의 1가량은 SK하이닉스 이천 본사에서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이천시에 법인지방소득세 3276억원을 납부했다. 올해 시 본예산(1조183억원)의 32.1%다.
평택의 상황도 비슷하다. 삼성전자가 평택시에 낸 법인지방소득세는 2017년 33억원에서 2018년 457억원, 올해 916억원으로 급증했다. 현재 짓고 있는 삼성전자 평택2공장이 내년부터 본격 가동되고, 시스템 반도체 라인 증설이 끝나면 평택시는 2000억원 이상의 세금을 삼성전자에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권 활성화도 무시할 수 없는 효과다. 삼성전자가 짓고 있는 평택2공장 등엔 2만 명 정도의 건설 인력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근로자들이 모여 사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근처에서 만난 한 자영업자는 “많은 근로자가 평택에서 먹고 마시고 자면서 상권이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용인·화성·청주시도 올해 적게는 2614억원(용인), 많게는 4651억원(화성)의 법인지방소득세를 걷었다. 화성시 법인세는 통영(23억원)의 202배다. 세수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들 도시의 재정자립도(지자체 일반회계세입 중 지방세, 세외수입의 비율)는 대도시 못지않은 수준으로 개선됐다. 화성의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기준 64.2%다. 전국 광역시 가운데 화성보다 자립도가 높은 도시는 인천(67.0%)밖에 없다.
3분의 1 토막난 통영 법인세
제조업 쇠락은 도시 재정을 옥죄기도 한다. ‘길거리의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조선업 메카 거제와 통영의 곳간 사정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통영시가 올해 기업들로부터 신고받은 법인지방소득세는 지난해 74억원에서 3분의 1토막 났다. 통영시 관계자는 “체납액 징수에 목 매야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거제시도 37억원을 수금하는 데 그쳤다. 거제시 관계자는 “실적이 악화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지난해부터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하고 있다”며 “두 회사의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2000여 개 법인이 낸 법인세가 40억원에도 못 미쳤다”고 말했다.
한국GM과 현대중공업 공장이 문을 닫은 군산도 지난해보다 11%가량 적은 183억원의 세금을 기업들로부터 걷었다. 군산시 관계자는 “세수가 줄면 예산은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재정 상태도 ‘바닥’에서 좀처럼 못 벗어나고 있다. 거제와 통영의 재정자립도는 각각 34.5%, 22.2%로 경남 평균(44.7%)에 크게 못 미친다.
세수 증감은 주민 삶의 질과 직결
세수 증감은 예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주민들 삶의 질에 직결된다는 얘기다. 곳간이 풍족한 도시들은 ‘주민 삶의 질 개선’에 힘쓰고 있다. 재작년 30억원, 작년 50억원을 들여 ‘도시숲 조성사업’을 진행 중인 평택이 대표적이다.
이천시는 다양한 문화·편의 시설에 투자하고 있다. 최신식으로 증축 중인 이천시립박물관이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여느 광역시 부럽지 않을 수준의 아트홀도 갖췄다. 이천 도심 중리천로에서 만난 한 시민은 “다음달 모스크바 국립발레단이 이천 아트홀에서 공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거제 통영 군산 등은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정신없다. 통영의 전년 대비 올해 예산 증가율은 7.2%로 이천(21.7%)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마저도 지방교부금이나 정부 보조금이 없었으면 꿈도 못 꿨을 수치다.
SOC나 문화시설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예산의 30%를 실직자 등을 위한 복지 등에 쏟아부어야 할 처지다. 통영시가 추진했던 ‘도시공원 조성’ 사업 등은 좌초 위기에 처했다. 시는 관련 예산 100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시 관계자는 “도시 내 자연경관을 미래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인데, 재원이 없어 공원을 못 만들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거제의 SOC 투자 사업도 준공 지연이 우려되고 있다. 40년 숙원 사업인 ‘동서 간 연결도로’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 관계자는 “땅을 모두 파헤쳐 놓은 공사 현장이 흉물로 남을까 걱정”이라며 “시장이 국회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천·평택=황정수/고재연 기자 hjs@hankyung.com
제조업이 도시의 운명을 가르고 있다. 반도체 산업 도시들은 삼성전자 등이 낸 수천억원의 세금으로 지역 인프라 확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선업 쇠락의 직격탄을 맞은 도시들은 반대 상황이다. 기업들이 세금을 못 내 중앙정부에서 내려주는 지방교부금과 보조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도로, 공원 등 기반시설 투자는 줄줄이 연기했다. 반도체 기업 덕분에 ‘세수 풍년’
반도체 공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세수 풍년’을 맞았다. 16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화성·수원·용인·평택시 등에 총 1조1064억원을, SK하이닉스는 이천·청주시 등에 5237억원의 법인지방소득세(2018년 실적분)를 냈다. 반도체 호황이 시작되기 전인 2년 전과 비교하면 각각 3.8배, 9.5배로 늘었다. 법인지방소득세는 이익을 낸 기업이 법인세 과세표준의 1.0~2.5%를 각 지역 공장 면적과 근무 인원에 따라 배분해 지자체에 내는 세금이다.
이들 지자체는 사회간접자본(SOC)에 수백억원씩 투자하며 곳간을 풀고 있다. 이천시는 도로 상하수도 등 SOC 확충에 예산의 약 40%를 투자하고 있다. 재원의 3분의 1가량은 SK하이닉스 이천 본사에서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이천시에 법인지방소득세 3276억원을 납부했다. 올해 시 본예산(1조183억원)의 32.1%다.
평택의 상황도 비슷하다. 삼성전자가 평택시에 낸 법인지방소득세는 2017년 33억원에서 2018년 457억원, 올해 916억원으로 급증했다. 현재 짓고 있는 삼성전자 평택2공장이 내년부터 본격 가동되고, 시스템 반도체 라인 증설이 끝나면 평택시는 2000억원 이상의 세금을 삼성전자에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권 활성화도 무시할 수 없는 효과다. 삼성전자가 짓고 있는 평택2공장 등엔 2만 명 정도의 건설 인력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근로자들이 모여 사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근처에서 만난 한 자영업자는 “많은 근로자가 평택에서 먹고 마시고 자면서 상권이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용인·화성·청주시도 올해 적게는 2614억원(용인), 많게는 4651억원(화성)의 법인지방소득세를 걷었다. 화성시 법인세는 통영(23억원)의 202배다. 세수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들 도시의 재정자립도(지자체 일반회계세입 중 지방세, 세외수입의 비율)는 대도시 못지않은 수준으로 개선됐다. 화성의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기준 64.2%다. 전국 광역시 가운데 화성보다 자립도가 높은 도시는 인천(67.0%)밖에 없다.
3분의 1 토막난 통영 법인세
제조업 쇠락은 도시 재정을 옥죄기도 한다. ‘길거리의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조선업 메카 거제와 통영의 곳간 사정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통영시가 올해 기업들로부터 신고받은 법인지방소득세는 지난해 74억원에서 3분의 1토막 났다. 통영시 관계자는 “체납액 징수에 목 매야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거제시도 37억원을 수금하는 데 그쳤다. 거제시 관계자는 “실적이 악화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지난해부터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하고 있다”며 “두 회사의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2000여 개 법인이 낸 법인세가 40억원에도 못 미쳤다”고 말했다.
한국GM과 현대중공업 공장이 문을 닫은 군산도 지난해보다 11%가량 적은 183억원의 세금을 기업들로부터 걷었다. 군산시 관계자는 “세수가 줄면 예산은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재정 상태도 ‘바닥’에서 좀처럼 못 벗어나고 있다. 거제와 통영의 재정자립도는 각각 34.5%, 22.2%로 경남 평균(44.7%)에 크게 못 미친다.
세수 증감은 주민 삶의 질과 직결
세수 증감은 예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주민들 삶의 질에 직결된다는 얘기다. 곳간이 풍족한 도시들은 ‘주민 삶의 질 개선’에 힘쓰고 있다. 재작년 30억원, 작년 50억원을 들여 ‘도시숲 조성사업’을 진행 중인 평택이 대표적이다.
이천시는 다양한 문화·편의 시설에 투자하고 있다. 최신식으로 증축 중인 이천시립박물관이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여느 광역시 부럽지 않을 수준의 아트홀도 갖췄다. 이천 도심 중리천로에서 만난 한 시민은 “다음달 모스크바 국립발레단이 이천 아트홀에서 공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거제 통영 군산 등은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정신없다. 통영의 전년 대비 올해 예산 증가율은 7.2%로 이천(21.7%)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마저도 지방교부금이나 정부 보조금이 없었으면 꿈도 못 꿨을 수치다.
SOC나 문화시설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예산의 30%를 실직자 등을 위한 복지 등에 쏟아부어야 할 처지다. 통영시가 추진했던 ‘도시공원 조성’ 사업 등은 좌초 위기에 처했다. 시는 관련 예산 100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시 관계자는 “도시 내 자연경관을 미래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인데, 재원이 없어 공원을 못 만들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거제의 SOC 투자 사업도 준공 지연이 우려되고 있다. 40년 숙원 사업인 ‘동서 간 연결도로’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 관계자는 “땅을 모두 파헤쳐 놓은 공사 현장이 흉물로 남을까 걱정”이라며 “시장이 국회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천·평택=황정수/고재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