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정말 이대로 괜찮습니까?”

김광수 농협금융그룹 회장은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 4월 취임 후 줄곧 그랬다. 기존 업무방식이나 목표를 바꾸지 않고 이어가도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라는 취지에서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의견을 내달라고도 당부한다. 당장 편하다고 해오던 대로 하면 성장은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김 회장이 취임 직후 ‘변화추진국’이라는 조직을 신설해 경영 체질 개선을 위한 30대 과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동안 농협금융은 보수적이고 낡은 조직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김 회장은 취임식 때 “업무 전반을 점검해 스마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업무관행이 있다면 전면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요즘도 직원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어김없이 변화 얘기를 꺼내든다. “발전을 도모하려면 언제든 변화에 뛰어들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소통하고 힘을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

김 회장은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전남 보성 출신인 그는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첫 직장은 외환은행. 입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에 갔을 때 마음을 바꿨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공무원이라는 생각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도 변화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과에서 일했다. 이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등을 두루 거쳤다. 금융관료 시절 그는 1997년 외환위기, 1999년 대우사태,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겪었다. 당시 금융정책과장이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함께 위기 해결에 앞장선 핵심 관료로 꼽힌다. 관료 선후배들과 힘을 합쳐 위기를 풀어가며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도 익혔다. 김 회장은 요즘도 “관료 시절의 경험이 인생의 큰 자산”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경험은 김 회장이 농협금융에서 토론 문화를 만드는 데 기반이 됐다. 특정 현안을 놓고 함께 일하는 동료끼리 얼마나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느냐가 업무 성과를 좌우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방적으로 상사에게 보고하는 데 그쳤던 농협금융 내 보고 문화도 바꿨다. 질문이 오가고 토론이 이뤄지도록 유도했다. 소통하며 함께 힘을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불타는 학구열…현장 공부에 90년대생 탐구까지

직원들은 김 회장의 강점으로 학구열을 꼽는다. 어떤 문제든 쉽게 넘겨짚지 않는다. 꼼꼼하게 공부하고 알아본 뒤 자신의 시각과 방향을 제안한다. 디지털 전략을 논의할 땐 디지털 관련 책 서너 권을 읽고 오는 게 기본이다. 농협은행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에도 수시로 들어가보며 고객 관점에서 사용 경험을 분석한다.

김 회장의 경영 신조는 논어에 나오는 ‘학여 역수행주 부진즉퇴(學如 逆水行舟 不進則退)’다. 배움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처럼, 나아가지 않으면 바로 후퇴한다는 뜻이다. 특히 금융환경은 갈수록 빠르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해야 대응 전략을 짤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현장 경영에 적극 나서는 것도 농협금융의 이모저모를 공부하기 위해서다. 취임 첫해엔 수시로 전국 곳곳의 영업점을 찾아다녔다. 요즘은 1990년대생을 ‘공부’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달 경영전략회의에서 직원들에게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그는 “이제는 마케팅을 비롯한 모든 의사결정의 핵심이 90년대생”이라며 “90년대생의 습관, 습성 등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20~30대 젊은 층과 접점을 늘리면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는 것은 농협금융의 숙원이다.

책읽기는 김 회장의 취미이자 무기다. 그는 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간접 경험을 쌓는 것을 즐긴다. 누군가 인생 조언을 구할 때면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몸은 하나이고 하루는 24시간으로 정해져 있으니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하려면 책을 읽으라”고 덧붙인다. 김 회장은 여행을 갈 때도 그 지역에 관한 책을 반드시 읽고 간다. 책을 통해 상상한 것과 실제를 비교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감각 겸비 “글로벌 사업 확대 추진”

김 회장은 농협금융에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올 들어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등 해외 출장을 다니며 글로벌 사업을 집중적으로 챙겼다. 농협금융이 글로벌 사업에 발을 들인 것은 2012년부터다.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늦은 편이다. 태생적인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농협금융은 농업 발전과 농민 소득 증대에 기여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안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월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올해를 글로벌 사업 확대 및 고도화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글로벌 사업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국가별 금융정책 방향과의 조화, 사업 확장성 등을 고려해 현지에 적합한 성장로드맵을 다시 정립하기로 했다. 미래 수익 기반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김 회장의 글로벌 감각이 발휘될 거란 기대도 많다. 김 회장은 아프리카개발은행에서 대리이사를 지내며 글로벌 감각을 키웠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원 국제경제학과, 프랑스국립행정대학원도 졸업했다. 영어와 프랑스어 등 외국어 실력이 뛰어난 것도 강점이다.

동시다발적인 변화는 직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일할 때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는 확실히 쉬자’는 주의다. 김 회장은 지난해 여름휴가 때 직원들에게 영업일 기준 5일 이상은 휴가를 꼭 쓰라고 당부했다. 솔선수범하는 차원에서 김 회장도 5일간 여름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농협금융에서 임원이 4일 이상 휴가를 가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때도 김 회장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가능성을 언급한 《예정된 전쟁》이라는 책을 읽었다. 미·중 무역분쟁 이슈를 탐구하는 차원이었다는 후문이다.
"디지털 경쟁력에 조직 生死 달렸다"
"디지털 경쟁력에 조직 生死 달렸다"
■첫째도, 둘째도 '디지털 전환'…신입직원도 핀테크 인재 뽑는다

김광수 농협금융그룹 회장(사진)은 신사업동력으로 디지털 전환에 시동을 걸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농협금융을 1등 디지털 금융그룹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김 회장은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디지털 경쟁력 확보는 조직의 생사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올해 중요 사업과제 중 하나로 디지털 기술을 통한 소비자의 편의성 개선을 제시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을 지낸 그는 핀테크(금융기술)와 빅데이터 등에 대한 이해가 깊은 편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취임하면서 “연간 3000억원가량을 디지털 분야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뒤 디지털 강화에 꾸준히 공들이고 있다. 지난달엔 서울 양재동에 NH디지털혁신캠퍼스를 출범시켰다. NH디지털혁신캠퍼스는 농협금융이 조성한 디지털 특구다. 연면적 2080㎡로 금융계 디지털 기지 중 가장 크다. 농협금융은 NH디지털혁신캠퍼스 조성을 계기로 디지털 전환에 더욱 고삐를 조일 계획이다.

또 올해부터 농협은행, NH투자증권, 농협생명 등 계열사 채용 전 과정에 디지털 역량을 검증하는 장치를 넣기로 했다. 자기소개서에 디지털 역량과 경험을 기술하는 문항을, 직무능력검사엔 디지털 분야 지식을 측정하는 문제를 개발해 넣는 식이다. 면접전형에는 디지털 전문가를 면접위원으로 참여시킬 계획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신입직원에게 한 달간 매일 8시간씩 디지털 의무 교육을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머지않아 실적에도 반영될 거라는 관측이다. 농협금융은 올해 순이익 1조5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정했다. 2년 연속 1조원 이상 순이익을 거두겠다는 얘기다. 올 1분기엔 전년 동기보다 11.0% 증가한 432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2012년 농협금융 출범 후 1분기에 4000억원을 넘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광수 회장 프로필

△1957년 전남 보성 출생
△1976년 광주제일고 졸업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1년 외환은행 입행
△1983년 행정고시 합격(27회)
△1985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1991년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원 국제행정학과 졸업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 법규과장
△2001년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
△2001년 대통령 비서실 서기관
△2004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2008년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2009년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
△2011년 금융정보분석원장
△2014년 법무법인 율촌 고문
△2018년 4월~ 농협금융그룹 회장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