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액 대비 형량 낮아 '한탕주의' 조장
가상화폐 다단계 사기 증가세
다단계 암호화폐 사기가 지방으로 확대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낮고 사회생활을 마치고 은퇴해 노후자금을 들고 있는 노년층이 주요 타깃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등의 카페에서 노년층 대상으로 암호화폐 프로젝트 투자 상담을 하는 청년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기성 암호화폐 프로젝트로 전해졌다. 초기 암호화폐에 투자하면 거래소 상장 후 10배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다고 꼬드겨 현금을 받아챙기는 식이다.
일부는 투자자가 새 투자자를 소개하면 그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게 하는 다단계 형태도 보인다. 작년까지 서울 논현동 등 일부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던 다단계 사기 행태지만 올 들어 지방으로도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단계 사기꾼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서울에 국한됐던 활동 범위도 올해들어 전국으로 넓어지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 다단계 사기범이 유입된 것은 리플(XRP)이 시작이었다. 2013~2014년 다단계 업자들은 개당 2~5원 수준이던 리플을 다단계 방식으로 50원대에 판매했다. 막대한 폭리로 부를 축적한 업자들은 이후 국내 유명 암호화폐들의 초기 유통에도 관여했다.
암호화폐 유통으로 노하우를 습득한 다단계 업자들은 직접 암호화폐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신일해양기술(신일그룹)의 '신일골드코인'이 대표적이다. 150조 상당의 금괴가 실린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며 투자자들을 현혹해 사이버머니 수준의 가짜 암호화폐를 만들어 90억원 상당을 편취했다.
주범인 신일그룹 회장 류승진은 베트남으로 도피했고 인터폴 적색 수배가 내려졌다. 그럼에도 경북에서 금광 채굴을 내걸어 10억원 규모 사기를 벌였다. 베트남 현지에서 유니버셜코인, 유니페이 등 이름을 바꿔가며 계속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밴드 등 비공개 메신저 채팅방을 통해 관련 지식이 부족한 노년층을 현혹해 투자금을 뜯어낸다.
법원은 최근 신일그룹 관계자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투자자들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뤄질 가능성도 낮지만 처벌은 징역 1년6개월~5년 선고에 그쳤다. 피해액이 5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 선고도 가능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죄가 적용되지만 소용 없었다. 암호화폐를 활용한 사기범들에게는 일종의 '모범사례'가 된 셈이다.
사기죄의 경우 낮은 형량은 재범을 부추긴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처벌을 받은 사기범이 다시 사기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38.5%에 달한다. 전체 범죄 중 가장 높다. 2016년부터는 사기 전과 9범 이상(3만622명)이 초범(2만7746명)보다 많아졌다. 전체 범죄를 통틀어 유일한 현상.
사기범들이 암호화폐에 주목하는 것은 사기로 벌어들일 이득이 부담해야 할 위험보다 명확히 크기 때문이다. 잘만 하면 암호화폐로 수십억~수백억원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잘못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을 감당하면 된다는 계산인 셈이다. 암호화폐의 투기성과 사기꾼의 한탕주의, 사기죄의 낮은 형량이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다단계 금융사기(폰지 사기)를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은 미국 법원에서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암호화폐 사기를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참고해야 할 사례 아닐까.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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