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리스 회계기준(IFRS16)이 도입되면서 적지 않은 기업들이 부채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일부 기업은 최대 수조원 규모의 운용리스를 한꺼번에 부채로 반영하게 돼 재무구조가 나빠지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기업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자본 확충 방안을 꺼내들고 있다. 특히 부채 증가 폭이 큰 유통·항공·해운 업체들이 자본 적립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항공·해운사들, 자본확충 위해 '동분서주'
줄잇는 자본확충 행렬

올해 도입된 IFRS16의 핵심내용은 회사 운용리스 내용 전부를 재무제표에 자산과 부채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운용리스는 해당 회계연도에 지급한 리스료만 부채로 인식했다.

대규모 자산을 빌려 영업하는 기업일수록 부채 규모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 운송수단을 빌려야 하는 항공 및 해운 업체와 부동산 임차가 필수인 유통 업체가 IFRS16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아시아나항공(203%포인트), 티웨이항공(286%포인트), 현대상선(314%포인트) 등을 부채비율이 대폭 상승할 대표적 기업으로 꼽았다. 재무구조 악화가 신용등급 하락으로도 이어지면 금리 상승 및 투자심리 악화 등으로 자금조달 여건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자본 조달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850억원어치 영구채(신종자본증권)를 발행한 데 이어 최근엔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유동성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한정’을 받은 여파로 신용등급(BBB-)이 하향검토 대상에 오르면서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 길이 막혔다. 아시아나항공은 2조9481억원(지난해 말 기준)에 달하는 운용리스를 모두 부채로 반영하면 649%인 부채비율이 850% 수준까지 치솟는다.

대한항공도 영구채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상반기 안에 영구채 발행을 통해 1500억원가량을 조달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운용리스(1조8151억원)를 모두 부채로 반영하면 부채비율이 744%에서 800% 수준으로 상승한다.

운용리스로 분류되는 정기용선(TC)이나 나용선(BBC)으로 선박을 확보해온 컨테이너선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대상선만 해도 올해 부채로 반영하는 운용리스가 총 4조2926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도입을 위한 선박금융 구조를 짜고 있다. 지난해 10월 산업은행이 영구채 형태의 신주인수권부사채(6000억원) 및 전환사채(4000억원)를 인수해 1조원을 투입한 이후 후속 움직임이 없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 등 여러 컨테이너선사가 부채 부담을 덜 수 있는 자금 조달 아이디어를 짜는 데 한창”이라며 “앞으로 선박금융 방식에 적잖은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부동산 활용전략도 바뀔 듯

유통 업체들도 새로운 자본 확충 방식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보유 부동산을 매각해 재임차하는 ‘세일앤드리스백’이 운용리스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 업체 중 세일앤드리스백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롯데쇼핑은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롯데지주가 세운 리츠자산관리회사에 백화점, 대형마트 등 몇몇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제공하는 식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예정이다.

홈플러스도 세일앤드리스백 대신 리츠 상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 회사는 국내 홈플러스 매장 51개를 기초자산으로 묶은 홈플러스리츠를 상장시켜 대규모 현금을 손에 쥐려고 했다. 하지만 지난달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한 수요예측 결과가 부진하자 상장을 철회하고 국내 증시 입성 도전을 잠시 미뤘다.

신용등급 하락위기에 놓인 이마트 또한 신세계그룹의 리츠 상장 추진 과정에서 보유 매장을 리츠가 투자할 자산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회사는 현재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4000억원 규모 영구채 발행을 추진 중이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담당 임원은 “세일앤드리스백의 재무개선 효과가 예전만 못하게 되면서 유통 업체들은 이를 대신할 자본 확충 전략을 속속 들고나올 것”이라며 “국내에선 아직 낯선 투자 대상인 리츠가 주목을 받는 데 성공한다면 충분히 부채 부담 경감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