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분이 오락가락…이게 다 호르몬 때문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말이다. 호르몬은 성 분화뿐 아니라 키와 몸무게, 감정과 생각, 성장과 질병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의학 작가 랜디 허터 엡스타인은 저서 《크레이지 호르몬》에서 호르몬을 통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내부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의사인 저자는 컬럼비아대 저널리즘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내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 덕분에 전문용어가 많은 의학 지식을 일반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풀어낸다.

호르몬을 ‘호르몬’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05년 영국의 생리학자인 에른스트 헨리 스탈링이 처음 썼다. 호르몬은 ‘흥분시키다’ 또는 ‘자극하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호르마오’에서 유래했다. 땀이나 눈물처럼 관이 있어 몸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외분비 물질과 달리 호르몬은 혈액 속으로 흘러나오는 내분비 물질이다. 저자는 “호르몬은 대사와 행동, 수면과 기분 변화 면역계를 조절하는 화학물질”이라며 “이 책은 호흡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존재의 생화학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막연히 알고는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호르몬과 생각보다 더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임신테스트기, 피임약, 성장호르몬 주사, 스테로이드 등은 쉽게 접할 수 있는 호르몬 의약품 및 의약기기다. 분노를 유도하고 모성애를 자극하며 인체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은 호르몬 조절로 이뤄진다. 저자는 뇌하수체호르몬과 태반호르몬 등 지난 100여 년간 호르몬에 대해 알아가면서 한발씩 내딛게 된 의학의 발전을 따라간다. 경이로운 발견들 사이엔 별난 실험과 광기가 만들어낸 에피소드도 숨어있다.

인간의 행동과 충동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하고 호르몬 연구를 통한 의학의 미래까지 가늠해보고 싶다면 읽어볼 만하다. (랜디 허터 엡스타인 지음, 양병찬 옮김, 동녘사이언스, 452쪽, 1만98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