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술 믿고 고객 무시하면 대기업도 한순간에 추락
은퇴 후 자영업을 시작하려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일단 업종을 골라야 한다. 소규모 자본으로, 시장성이 좋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주요 고객을 누구로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업종과 고객의 윤곽을 잡은 뒤에야 매장 위치와 규모, 운영 방법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영업·유통 전문가인 김종훈 씨는 《고객가치》에서 “자영업에 뛰어든 많은 이가 매장 위치와 규모부터 정한다”며 “이렇게 하면 선택의 폭이 줄어들고, 무리해 원치 않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LG전자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30년간 제품개발과 상품기획, 사업전략, 해외영업 등을 담당했다. 영국 터키 이란 멕시코 4개국에서 13년을 근무했고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모바일 결제 서비스 등도 사업화했다. 이란계 유통회사의 전략본부장(CSO)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고객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한다. 가치 평가의 주체가 기업이나 마케터가 아니라 고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업 초기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앞서 고객을 고려하지 않고 시장에 진입했다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고도 초라한 판매 실적을 냈던 세그웨이를 사례로 든다. 이후 세그웨이는 산업용과 일반용 시장을 구분하고 일반용도 고객 연령대와 요구 수준에 따라 사양을 달리하면서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리게 된다. 저자가 언급한 ‘고객이 원하는 것은 고객마다 모두 다르다’는 고객가치의 두 번째 본질도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고객이 원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같은 성공’이 반복되기 어려운 이유다. 책은 우버와 리프트, 넷플릭스와 유튜브,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젝트와 아마존의 무인 슈퍼마켓 등을 통해 고객가치의 실체와 중요성을 구체화해 보여준다. 저자는 고객가치를 우주선과 비행사를 연결해주는 생명줄에 비유한다. “기업이 의미있는 고객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순간 유일한 연결고리인 생명줄은 끊어진다. 100년 이상 영속할 것만 같았던 글로벌 기업이 시장 밖으로 사라지는 것도 순간이다.” (김종훈 지음, 클라우드나인, 199쪽, 1만5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