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봄기운 가득 머금은 수선화…거제의 봄 1번지로 여행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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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예구포구 수선화 농원 '공곶이'로 떠나는 봄여행
예구포구 수선화 농원 '공곶이'로 떠나는 봄여행
남도의 봄 색은 화려하다. 봄기운 가득 머금은 수선화가 수줍은 새색시처럼 고개 숙인 자태로 꽃망울을 터뜨린다. 붉은 입을 열어젖힌 동백꽃도 화사하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 예구리에서 야트막한 산 하나를 넘으면 내도와 마주한 공곶이에서 봄을 마주하게 된다. 공곶이는 ‘거제 8경’ 중 하나. 누군가 숨겨놓은 것처럼 쉬이 드러나지 않는 이곳에선 동백터널과 수선화, 종려나무가 명물로 손꼽힌다. 사람의 손끝에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거제도의 봄 1번지로 봄 여행을 떠나보자.
40년 세월 부부의 피땀으로 일군 공곶이
공곶이는 거제도 동쪽 끝자락 산비탈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도로가 와현해수욕장 너머 예구마을 포구까지만 나 있어 주차장에서 산길을 따라 20여 분을 걸어야 닿을 수 있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가파른 숲길을 지나 산 중턱에 다다르면 예구포구가 펼쳐진다. 언덕에서 발아래로 펼쳐진 남해 풍경이 장관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내도와 바다에 우뚝 솟은 해금강도 아련하게 눈길에 잡힌다.
공곶이는 강명식 지상악 씨 부부가 평생을 바쳐 일군 농원이다. 이곳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화 ‘종려나무숲’에 등장하면서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배경지가 금세 유명세를 치르는 것과 달리 공곶이는 아직 한가한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오지 아닌 오지인 탓에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여행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957년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한 부부는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일궈 나무와 꽃을 심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넉넉지 않은 살림 탓에 척박한 야산은 호미와 삽, 곡괭이만으로 일궜다. 그 덕에 아직 이곳은 험준한 산비탈의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다. 부부의 10여 년 객지생활을 제외하면 40년 세월 동안 피땀이 밴 인간승리의 현장인 셈이다.
언덕 아래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내려가면 나무터널이 등장한다. 공곶이로 들어서는 관문이자 명물 중 하나로 꼽히는 동백터널이다. 200m에 이르는 동백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다. 가파른 흙길에는 폭 1m 안팎의 터널에 무려 333개의 돌계단이 깔려 있다.
동백꽃은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3월이면 이미 한 차례 꽃이 떨어져 꽃밭 일대는 마치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터널 초입에선 농원에서 봄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꽃망울을 터뜨린 백동백의 자태도 확인할 수 있다.
14만9000㎡의 농원에 부부의 보살핌 속에 꽃을 피운 나무와 꽃은 50여 종. 동백나무만 50종이 넘는다. 바다를 향해 쭉 뻗어 있는 동백터널은 하늘마저 모습을 감출 정도로 울창하다. 터널을 따라 양쪽 산비탈 계단식 밭에는 동백나무와 수선화, 종려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다.
봄이면 노란 수선화 만발 꽃대궐로 변신
공곶이는 봄이면 물이 잔뜩 오른 종려나무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우거진 숲을 찾아 날아든 온갖 새들의 지저귐에선 따사로운 봄기운과 더불어 청량함이 느껴진다. 수선화와 함께 나란히 심어놓은 조팝나무가 순백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4월, 공곶이는 꽃대궐을 이룬다. 동백 터널을 빠져나와 돌담과 종려나무숲 사이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쪽빛 바다가 펼쳐지고 바닷가는 동글동글한 자갈이 깔린 몽돌해변으로 이어진다. 서이말등대를 향해 길게 뻗은 바닷가에는 해안가 몽돌을 사용해 만든 방풍벽이 돌담 형태로 쌓여 있다.
영화 종려나무숲 촬영 당시 지어놓은 세트장 앞마당과 돌담을 둘러친 노부부의 살림집 주변은 온통 수선화 밭이다. 매년 3월 말이면 6600㎡의 밭은 노란 꽃망울을 경쟁이라도 하듯 터뜨리는 수선화로 장관을 연출한다.
지금은 관광농원이지만 공곶이는 부부가 생계를 위해 일군 삶의 터전이다. 1957년 이 땅을 처음 본 강씨는 한눈에 반해 10여 년 객지 생활을 통해 벌어놓은 돈을 몽땅 투자해 땅을 사들였다. 꽃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은 당시 그가 심은 꽃은 글라디올러스 두 뿌리.
도시 생활을 접고 호기롭게 시작한 꽃농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곡식이 귀하던 시절 꽃을 심을 땅을 빌리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밥상만 한 크기의 땅을 빌려 꽃을 심기 시작했지만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지인의 도움으로 진영에 있는 성당 묘지 한 귀퉁이를 빌려 꽃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옛 추억이지만 당시엔 한치 앞을 알 수 없이 막막했던 공곶이의 탄생 비화다.
애초 농원의 탄생이 이랬던 탓에 부부는 농원을 찾는 여행객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 흔한 매점, 방문객을 위한 벤치도 하나 없다. 그저 부부의 손길 덕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자연만이 손님을 반길 뿐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곳
세월이 흘러 부부는 꽃농사가 자리 잡을 즈음 농어촌소득증대사업으로 귤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1976년 한파에 2000그루의 귤나무가 몽땅 얼어 죽었다. 당시 자살을 떠올릴 만큼 절망에 빠졌었다는 강씨는 그때부터 머리가 세기 시작했다. 동백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인근에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것을 보고 일본에서 들여온 묘종을 심기 시작했다. 종려나무도 이때부터 심었다.
농원을 가득 메운 나무와 꽃은 모두 판매용이다. 종려나무 잎은 주로 화환 장식에 사용하고 수선화는 꽃꽂이용으로 쓰인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종려나무 잎은 판로가 끊겼다. 화환에 쓰이던 종려나무 잎이 모두 플라스틱 인공 잎으로 대체된 탓이다.
공곶이는 도로를 내지 못해 외도처럼 관광농원 허가를 받을 수 없다. 게다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관광객이 쉬어갈 정자 하나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부부로선 당장 살길이 막막할 일이지만 부부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소박한 공곶이의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하나둘 찾는 이가 늘고 있어서다. 매번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라는 게 쉽지 않으련만 이들 부부는 ‘친절’이 몸에 배어 있다. 여행자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일일이 설명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꽃보다 아름답고 봄보다 따사로운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윤정식 여행작가 caos999@naver.com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 비룡분기점→대전~통영 간 고속도로→통영나들목→14번 국도→와현→예구마을
예구마을에서 공곶이까지는 차로가 없다. 이 때문에 포구에 차를 세워놓고 작은 산 하나를 걸어서 넘어야 한다.
주변 볼거리: 내도, 거제 해금강, 대소 병대도, 지심도, 거제어촌 민속전시관,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몽돌해수욕장, 바람의 억덕, 신선대, 망산, 청마 생가 등
먹을거리: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할 만큼 최고의 먹을거리는 도다리쑥국을 꼽을 만하다. 쑥국에 들어가는 도다리는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햇도다리로, 담백하고 향긋한 맛이 일품. 거제도 대부분의 식당에서 맛볼 수 있지만 백만석이 유명하다. 멍게비빔밥, 성게알비빔밥, 물메기탕, 생멸치회 등을 별미로 즐길 수 있다.
드라이브 코스: 14번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여차~홍포 구간(1018번 지방도)이 백미다. 거제도 최남단이어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고 남해에 올망졸망 떠 있는 다도해 풍광이 압권이다. 길 중간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40년 세월 부부의 피땀으로 일군 공곶이
공곶이는 거제도 동쪽 끝자락 산비탈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도로가 와현해수욕장 너머 예구마을 포구까지만 나 있어 주차장에서 산길을 따라 20여 분을 걸어야 닿을 수 있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가파른 숲길을 지나 산 중턱에 다다르면 예구포구가 펼쳐진다. 언덕에서 발아래로 펼쳐진 남해 풍경이 장관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내도와 바다에 우뚝 솟은 해금강도 아련하게 눈길에 잡힌다.
공곶이는 강명식 지상악 씨 부부가 평생을 바쳐 일군 농원이다. 이곳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화 ‘종려나무숲’에 등장하면서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배경지가 금세 유명세를 치르는 것과 달리 공곶이는 아직 한가한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오지 아닌 오지인 탓에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여행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957년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한 부부는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일궈 나무와 꽃을 심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넉넉지 않은 살림 탓에 척박한 야산은 호미와 삽, 곡괭이만으로 일궜다. 그 덕에 아직 이곳은 험준한 산비탈의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다. 부부의 10여 년 객지생활을 제외하면 40년 세월 동안 피땀이 밴 인간승리의 현장인 셈이다.
언덕 아래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내려가면 나무터널이 등장한다. 공곶이로 들어서는 관문이자 명물 중 하나로 꼽히는 동백터널이다. 200m에 이르는 동백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다. 가파른 흙길에는 폭 1m 안팎의 터널에 무려 333개의 돌계단이 깔려 있다.
동백꽃은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3월이면 이미 한 차례 꽃이 떨어져 꽃밭 일대는 마치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터널 초입에선 농원에서 봄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꽃망울을 터뜨린 백동백의 자태도 확인할 수 있다.
14만9000㎡의 농원에 부부의 보살핌 속에 꽃을 피운 나무와 꽃은 50여 종. 동백나무만 50종이 넘는다. 바다를 향해 쭉 뻗어 있는 동백터널은 하늘마저 모습을 감출 정도로 울창하다. 터널을 따라 양쪽 산비탈 계단식 밭에는 동백나무와 수선화, 종려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다.
봄이면 노란 수선화 만발 꽃대궐로 변신
공곶이는 봄이면 물이 잔뜩 오른 종려나무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우거진 숲을 찾아 날아든 온갖 새들의 지저귐에선 따사로운 봄기운과 더불어 청량함이 느껴진다. 수선화와 함께 나란히 심어놓은 조팝나무가 순백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4월, 공곶이는 꽃대궐을 이룬다. 동백 터널을 빠져나와 돌담과 종려나무숲 사이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쪽빛 바다가 펼쳐지고 바닷가는 동글동글한 자갈이 깔린 몽돌해변으로 이어진다. 서이말등대를 향해 길게 뻗은 바닷가에는 해안가 몽돌을 사용해 만든 방풍벽이 돌담 형태로 쌓여 있다.
영화 종려나무숲 촬영 당시 지어놓은 세트장 앞마당과 돌담을 둘러친 노부부의 살림집 주변은 온통 수선화 밭이다. 매년 3월 말이면 6600㎡의 밭은 노란 꽃망울을 경쟁이라도 하듯 터뜨리는 수선화로 장관을 연출한다.
지금은 관광농원이지만 공곶이는 부부가 생계를 위해 일군 삶의 터전이다. 1957년 이 땅을 처음 본 강씨는 한눈에 반해 10여 년 객지 생활을 통해 벌어놓은 돈을 몽땅 투자해 땅을 사들였다. 꽃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은 당시 그가 심은 꽃은 글라디올러스 두 뿌리.
도시 생활을 접고 호기롭게 시작한 꽃농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곡식이 귀하던 시절 꽃을 심을 땅을 빌리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밥상만 한 크기의 땅을 빌려 꽃을 심기 시작했지만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지인의 도움으로 진영에 있는 성당 묘지 한 귀퉁이를 빌려 꽃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옛 추억이지만 당시엔 한치 앞을 알 수 없이 막막했던 공곶이의 탄생 비화다.
애초 농원의 탄생이 이랬던 탓에 부부는 농원을 찾는 여행객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 흔한 매점, 방문객을 위한 벤치도 하나 없다. 그저 부부의 손길 덕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자연만이 손님을 반길 뿐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곳
세월이 흘러 부부는 꽃농사가 자리 잡을 즈음 농어촌소득증대사업으로 귤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1976년 한파에 2000그루의 귤나무가 몽땅 얼어 죽었다. 당시 자살을 떠올릴 만큼 절망에 빠졌었다는 강씨는 그때부터 머리가 세기 시작했다. 동백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인근에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것을 보고 일본에서 들여온 묘종을 심기 시작했다. 종려나무도 이때부터 심었다.
농원을 가득 메운 나무와 꽃은 모두 판매용이다. 종려나무 잎은 주로 화환 장식에 사용하고 수선화는 꽃꽂이용으로 쓰인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종려나무 잎은 판로가 끊겼다. 화환에 쓰이던 종려나무 잎이 모두 플라스틱 인공 잎으로 대체된 탓이다.
공곶이는 도로를 내지 못해 외도처럼 관광농원 허가를 받을 수 없다. 게다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관광객이 쉬어갈 정자 하나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부부로선 당장 살길이 막막할 일이지만 부부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소박한 공곶이의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하나둘 찾는 이가 늘고 있어서다. 매번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라는 게 쉽지 않으련만 이들 부부는 ‘친절’이 몸에 배어 있다. 여행자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일일이 설명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꽃보다 아름답고 봄보다 따사로운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윤정식 여행작가 caos999@naver.com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 비룡분기점→대전~통영 간 고속도로→통영나들목→14번 국도→와현→예구마을
예구마을에서 공곶이까지는 차로가 없다. 이 때문에 포구에 차를 세워놓고 작은 산 하나를 걸어서 넘어야 한다.
주변 볼거리: 내도, 거제 해금강, 대소 병대도, 지심도, 거제어촌 민속전시관,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몽돌해수욕장, 바람의 억덕, 신선대, 망산, 청마 생가 등
먹을거리: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할 만큼 최고의 먹을거리는 도다리쑥국을 꼽을 만하다. 쑥국에 들어가는 도다리는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햇도다리로, 담백하고 향긋한 맛이 일품. 거제도 대부분의 식당에서 맛볼 수 있지만 백만석이 유명하다. 멍게비빔밥, 성게알비빔밥, 물메기탕, 생멸치회 등을 별미로 즐길 수 있다.
드라이브 코스: 14번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여차~홍포 구간(1018번 지방도)이 백미다. 거제도 최남단이어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고 남해에 올망졸망 떠 있는 다도해 풍광이 압권이다. 길 중간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