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지산동 고분군 석곽묘에서 발견된 대가야 건국신화가 담긴 토제방울.
고령 지산동 고분군 석곽묘에서 발견된 대가야 건국신화가 담긴 토제방울.
가야의 시조(始祖)가 탄생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6종이 새겨진 토제방울(흙으로 만든 방울)이 대가야 고분에서 발견됐다. 문헌으로만 전해온 고대 건국신화가 유물에 반영돼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20일 “대동문화재연구원이 지난 2월부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을 발굴한 결과 5세기 후반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소형 석곽묘에서 흙으로 만든 지름 5㎝가량의 방울 1점을 발견했다”며 “이 방울의 표면에 선으로 새긴 남성의 성기, 거북의 등껍질, 관을 쓴 남자,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등 6종의 독립적인 그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각각의 그림은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오는 김수로왕의 건국설화와 일치한다. 11세기 고려 문종 때 편찬한 가야 역사서 가락국기는 현존하지는 않고 일부 내용이 삼국유사에 축약돼 전해지고 있다.

가락국기에 따르면 산봉우리인 구지(龜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어디에선가 “너희들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하고 뛰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해 기뻐 뛰놀게 될 것이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에 ‘구간(九干)’인 씨족장 9명이 노래하고 춤을 추다 하늘을 보니 보자기에 싸인 금빛상자가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왔고, 그 안에서 황금알 6개를 찾았다. 알에서 나온 아이는 쑥쑥 자라서 이름을 수로(首露)라고 했고, 나라 이름을 대가락(大駕洛) 또는 가야국이라고 지었다. 나머지 알에서 탄생한 아이도 각각 가야국 임금이 됐다는 내용이다.

토제방울의 남성 성기는 구지봉, 거북 등껍질은 구지가(龜旨歌), 관을 쓴 남자는 구간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늘을 보는 사람은 팔과 발을 간략하게 그렸으며, 금빛 상자는 잎사귀 모양으로 나타냈다. 방울에 새긴 선은 가늘고 깊지 않아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렵고 현미경으로 봐야 확인할 수 있다.

가락국 건국설화를 담은 그림이 대가야 고분에서 나온 배경에 대해 배성혁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가락국기에 실린 난생(卵生) 설화는 가야 지역 건국신화에 공통으로 나오는 핵심 요소일 가능성이 크다”며 “방울을 만든 대가야 장인은 그가 살던 대가야 시조의 탄생 설화를 보여주고자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번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가락국기가 전하는 건국신화는 더 이상 금관가야의 전유물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고, 토제방울 그림은 여러 가야의 건국신화를 재조명할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토제방울이 나온 석곽묘는 길이 165㎝, 너비 45㎝, 깊이 55㎝ 규모다. 어린아이가 묻혔던 것으로 추정되며, 방울 외에 소형 토기 6점, 쇠낫 1점, 화살촉 3점, 곡옥 1점 등과 어린아이의 치아와 두개골 조각이 함께 출토됐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