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정부 외면에도…삼성 이어 카카오까지 '가상화폐지갑' 새 먹거리로
대기업들의 가상화폐 월렛(암호화폐 지갑) 사업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달 8일 국내 출시된 삼성전자의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10 탑재에 이어 대표 메신저 카카오톡도 암호화폐 지갑 기능 제공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강자인 삼성과 카카오가 전면에 나서면 멀게만 느껴지던 암호화폐 상용화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9일 카카오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의 ‘클레이튼’ 테스트넷 공개 자리에서 한재선 대표는 카카오톡 암호화폐 지갑 탑재 여부에 대해 “확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정부 기조를 감안해 말을 아꼈을 뿐, 카카오가 지갑 탑재를 추진 중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클레이튼 파트너사들은 카카오톡에 블록체인 메인넷 클레이튼을 적용하고 암호화폐 지갑 탑재도 준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블록체인 키스토어’와 ‘블록체인 월렛’을 탑재하고 분산형 애플리케이션(디앱·dApp) 연동까지 가능한 갤럭시S10과 유사한 모델인 셈이다.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출시 행사에 참석해 갤럭시S10을 소개했다. / 사진=삼성전자 제공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출시 행사에 참석해 갤럭시S10을 소개했다. / 사진=삼성전자 제공
정부가 여전히 암호화폐를 인정·허용하지 않는데도 제도권 대기업들이 움직이는 점은 의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업 미래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풀이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삼성도 카카오도 그간 해온 스마트폰과 메신저 사업 및 서비스 모델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면서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가 아무리 막아도 기업은 생존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다음 먹거리’로 암호화폐 지갑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지갑은 결제·송금 등 실사용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다. 정부가 경계해온 암호화폐 투기와는 결이 다르다. 갤럭시S10에 카카오톡까지 지갑이 탑재되면, 투기 우려와 거리를 두면서도 일반 대중에게 암호화폐 서비스의 사용자경험(UX)을 제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암호화폐 투기와 연관성 높은 지표인 거래량은 작년 초에 비해 크게 줄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도 올해 들어 최고점 대비 80~90% 폭락한 바 있다. 암호화폐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국내 수위권 거래소 빗썸·코빗마저 대규모 인원감축에 나섰을 정도.
카카오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의 한재선 대표가 지난 19일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소개했다.
카카오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의 한재선 대표가 지난 19일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소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카카오페이와 주식 투기가 상관없듯 암호화폐 지갑과 암호화폐 투기 우려도 별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단 암호화폐 지갑이 지원하는 코인 시세 급등에 따른 투기 가능성은 남아있다. 삼성이 갤럭시S10 암호화폐 지갑 홍보를 자제하는 한 요인으로 전해졌다.

암호화폐 지갑의 뛰어난 확장성도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시장 선점 포석 외에도 갤럭시S10은 삼성페이·삼성카드, 카카오톡은 카카오페이·카카오뱅크와 각각 연동해 플랫폼 생태계를 키울 수 있어서다. 적어도 삼성과 카카오에겐 암호화폐 지갑이 ‘맞춤형 킬러콘텐츠’다.

“암호화폐 지갑의 차이점이라면 갤럭시S10은 보안, 카카오톡은 서비스 기능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정도일 것”이라고 내다본 박성준 센터장은 삼성과 카카오의 블록체인 생태계 경쟁을 향후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유통 기반 아마존과 인터넷검색 기업으로 출발한 구글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플랫폼 생태계 경쟁에서 각축을 벌이는 것처럼 될 수 있단 얘기다.

마지막 걸림돌은 도돌이표처럼 정부 규제다. 업계 관계자들은 “암호화폐가 합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법도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젠 다소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화에 나서야 하는 시점”이라면서도 “결국 금융 당국이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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