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가 가맹점 수수료 협상에서 현대차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앞길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앞으로 남은 협상에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신용카드사들은 이번 주부터 유통·이동통신·항공 등 업종의 초대형 가맹점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간다.
이들 3개 업종은 자동차와 함께 카드업계의 수수료 협상에서 최대 난제 업종이다.
카드 결제 물량이 많은 대형 고객이지만 카드사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어 항상 협상에서 밀려왔다.
이들 업종의 초대형 가맹점은 일찌감치 카드사에 수수료 인상안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카드사가 인상 요인을 납득시킬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이마트 관계자는 "카드사는 처음 보낸 공문에서 인상률과 적용 시점만 표기했다.
왜 올려야 하는지 객관적인 설명이 없었다"며 "구체적인 설명 없는 통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통·이동통신·항공업종의 초대형 가맹점이 카드사의 수수료 인상 방침에 불만을 가질 만한 측면이 있다.
인상 수준이 낮지 않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유통은 1.9%대에서 2.1%대로, 통신은 1.8%대에서 2.1%대로, 항공은 1.9%대에서 2.1%대로 각각 올린다고 통보했다.
인상폭이 유통과 항공은 각각 0.2%포인트, 통신은 0.3%포인트다.
당초 카드사가 현대차에 통보한 인상폭인 0.1%포인트와 비교하면 2∼3배 수준이다.
카드사는 이를 반대로 설명한다.
3년 전 적격비용(원가) 재산정에 따른 수수료 협상 때 비용 상승률 만큼 수수료를 올리지 못한 탓에 이번에 인상폭이 커졌다는 것이다.
한 대형 카드사 관계자는 "통신업종 인상폭이 큰 것은 3년 전에 수수료율을 못 올렸기 때문"이라며 "대형 가맹점 수수료율 중에서 통신이 1.8%로 가장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이들 업종에서 마케팅을 많이 진행하는 탓에 인상 수준이 크다고 카드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실제 카드의 기본적인 부가서비스 내용을 보면 이들 업종에 대한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 혜택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이동통신 요금을 카드로 결제하면 요금을 매달 3천원 깎아주거나 특정 마트나 백화점에서 결제하면 5% 또는 10% 할인해주고 있다.
항공사와 관련해서는 결제금액 1천원당 1마일을 적립해주는 식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동통신과 카드업계 간 마케팅이 활발한 편이다.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카드사들이 통신업종에서 지출한 마케팅 비용이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1천869억원으로, 이 업종에서 받은 가맹점 수수료 수입 1천850억원보다 많았다.
마케팅 비용만 따져봐도 카드사는 통신업종에서 적자를 본 셈이다.
물론 이는 카드사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려고 '출혈경쟁'을 벌인 탓도 크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카드수수료 종합개편방안'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마케팅 혜택을 받는 대형 가맹점에서 더 많은 수수료를 걷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결정했다"며 "마케팅 비용 개별화로 수익자 부담 원칙을 실현하고 카드수수료의 역진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들 업종의 수수료율을 올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카드업계는 이번 협상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협상에서 승기를 놓쳐 계속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카드업계는 당초 요구안의 절반 수준인 0.05%포인트 내외 인상으로 현대차와 협상을 마쳤다.
사실상 카드업계의 '투항'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유통·이동통신·항공 업종의 초대형 가맹점은 카드업계와 협상을 진척시키지 않고 현대차와 협상 결과가 나올 때까지 관망하다가 '우리도 현대차처럼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카드업계로서 위안거리는 이들 초대형 가맹점이 아직 가맹점 계약해지와 같은 강공 카드를 꺼내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현대차와 협상에서 일부 카드사는 2∼3일간 가맹점 계약해지를 당한 바 있다.
또 다른 대형 카드사 관계자는 "수수료 입장차가 워낙 커서 협상이 길어질 것 같다"며 "과거 협상이 연말까지 진행된 사례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면 자동차와 다르게 우리나 그쪽이나 서로 피해를 크게 보게 되는 점을 알고 있어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