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에 흰 모자를 쓴 사람들이 하얀 가루를 뿌리고 있다.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에 있는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의 섬 가운데 하나인 라팔마에서 지난 4일 시작한 ‘로스 인디아노스’ 축제의 한 장면이다. ‘화이트 파티’라고도 불리는 이 축제가 시작되면, 라팔마의 거리는 흥겨운 라틴 음악과 음식으로 가득 차고, 사람들은 하얀 옷을 입고 리듬에 맞춰 도시를 행진한다.

즐거워 보이기만 하는 이 축제의 기원엔 애환이 담겨있다. 무척이나 가난했던 19세기 라팔마의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라틴아메리카로 떠났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하기 시작한 중남미 나라들엔 돈 벌 기회가 많아서였다. 모진 고생을 참으며 돈을 모은 라팔마 사람들은 당시 멋쟁이들이 입던 흰 양복 차림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거리를 활보했다.

언젠가부터 그 모습을 본뜬 놀이가 생겨났고, 지금은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흥겨운 축제로 자리 잡았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