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2017년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 중 11위였다. 차량 생산 규모를 보면 세계 5위지만 R&D 투자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경쟁사에 비해 R&D 및 미래차 기술 투자에 인색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현대차그룹의 맏형인 현대차가 27일 향후 5년간 투자계획을 공개한 건 이런 인식을 바꾸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R&D와 미래 기술 투자를 대폭 확대해 미래차 시장을 잡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현대차, 연간 9.6兆 통 큰 투자…"미래차 '게임체인저' 되겠다"
미래 기술에만 15조원 투자

현대차는 이날 이원희 사장 주재로 ‘최고경영자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앞으로 5년간 투자계획을 상세하게 공개했다. R&D에 20조3000억원, 시설 유지보수 및 노후 설비 개선 등 경상투자에 10조3000억원을 투자한다.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와 자율주행 등 미래차 기술에는 1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총 투자액은 45조3000억원으로, 연평균을 내면 9조600억원 수준이다. 지난 5년(2014~2018년) 연평균 투자액(약 5조7000억원)보다 58.9% 늘어난 규모다.

특히 미래 기술 분야 투자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현대차는 지난해 약 8000억원을 미래차 분야에 투자했다. 올해부터는 이를 연평균 3조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현대차의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미래차 핵심기술을 확보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게임체인저’로 도약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세부적으로는 △차량 공유 등 모빌리티 분야에 6조4000억원 △차량 전동화 분야에 3조3000억원 △자율주행 및 커넥티비티 기술에 2조5000억원 △선행 기술 개발 등에 2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최근 자동차업계는 차량공유를 비롯한 미래형 모빌리티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형 모빌리티가 자동차산업의 틀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조만간 차를 사지 않고 공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현대차는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공유 업체인 그랩과 전기차 전용 호출 사업을 하는 등 다양한 글로벌 모빌리티 업체와 손을 잡고 있다. 인도의 레브, 미국의 미고, 호주의 카넥스트도어 등이 현대차와 협력 중이다.

영업이익률 2%에서 7%로 올린다

현대차는 이날 수익성 목표도 공개했다. 현대차가 구체적인 수익성 목표를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22년까지 자동차부문 영업이익률을 7%까지 높이는 게 목표다. 현대차 영업이익률(자동차부문)은 2015년 7.3%→2016년 5.4%→2017년 4.7%→지난해 2.1%로 계속 떨어졌다. 글로벌 판매량이 줄어드는 와중에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1.9%로 떨어진 자기자본이익률(ROE)도 9%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수익이 많이 나는 고급차 및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당장 SUV 모델 수를 4종(2017년)에서 8종(2020년)으로 늘린다.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라인업도 3종(2017년)에서 6종(2021년)으로 확대한다.

현대차가 수익성 개선 목표를 제시한 건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비롯한 글로벌 헤지펀드의 공세를 막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많다. 엘리엇은 최근 현대차에 5조8000억원의 배당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해 현대차 순이익(1조6450억원)의 3.5배 규모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에도 2조5000억원의 배당을 하라고 제안했다. 재계 관계자는 “엘리엇은 회사의 장기적 성장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 성향을 드러냈다”며 “현대차는 무리하게 배당을 하기보다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는 방식으로 엘리엇에 반격했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이날 “현대모비스 주주들은 우리의 제안에 힘을 모아 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공개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