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초 폴 싱어가 이끄는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현대차(3.0%)와 기아차(2.1%), 현대모비스(2.6%)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제시한 지배구조개편에 반대하던 엘리엇은 방향을 바꿔 주주가치를 높이라며 압박을 지속해왔습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배당금 확대, 자사주 매입과 소각 같은 주주환원책을 발표했습니다.
[기자수첩] 투자실패 떠넘긴 엘리엇...론스타의 추억
지난주 기아차에 이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오늘 이사회를 열어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사내이사와 대표이사 선임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약속했던 주주환원책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주주총회 안건에 평소에 보기 힘든 안건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전자공시시스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옵니다.

<2019.2.26 전자공시시스템 현대자동차 주주총회 소집공고 공시中>

제1-1호 : 제51기 재무제표 승인의 건

제1-2호 : 제51기 기말배당 및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승인의 건

제1-2-1호 : 현금배당(예정) 3,000원/주당(보통주 기준) (이사회안)

*우선주 3,050원/주당, 2우선주 3,100원/주당, 3우선주 3,050원/주당

제1-2-2호 : 현금배당(예정) 21,967원/주당(보통주 기준) (주주제안)

*우선주 22,017원/주당, 2우선주 22,067원/주당, 3우선주 22,017원/주당

※ 제1-2-1호와 제1-2-2호 의안에 대하여 의사를 표명하시되, 각 의안은 택일적이며

양립 가능하지 않으므로 두 의안 중 하나만 찬성 바랍니다.

오늘 이사회애서 주주총회 안건으로 의결한 기말배당건에 `주주제안`이 하나 더 붙어있습니다. (위 굵은줄)

눈에 번쩍 띄이는 제안입니다. 보통주 기준으로 이사회는 주당 3,000원을 안건으로 제시한 반면 이 주주는 여기에 7배가 넘는 21,967원을 요구했습니다. 우선주, 2우선주, 3우선주의 경우 대략 7배가 많습니다.

현대모비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19.2.26 전자공시시스템 현대모비스 주주총회 소집공고 공시中>

제2호 의안 :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승인의 건

(제2-1호 및 제2-2호 의안은 택일적이며 양립 가능하지 않음)

- 제2-1호 :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승인의 건

(주당 배당금: 보통주4,000원, 우선주4,050원)

- 제2-2호 :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승인의 건(주주제안)

(주당 배당금: 보통주26,399원, 우선주26,449원)


모비스 이사회가 제시한 금액에 비해 6배가 넘는 배당을 요구한 것입니다.

두 회사에 요구한 배당금액은 각각 4조5,000억원과 2조5,000억원으로 총 7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지난해 실적악화로 현대차의 영업이익이 2조4,000억원, 현대모비스의 영업이익이 2조25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크게 웃도는 무리한 수준입니다.
[기자수첩] 투자실패 떠넘긴 엘리엇...론스타의 추억
엘리엇의 대규모 배당요구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엇의 3개 회사 지분 매수단가를 지난해 4월2일로 가정하면 현재까지 1조원 넘게 들어간 투자는 실패작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엇 투자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가동향>

2018.4.2 2019.2.26 등락률 (%)

현대자동차 148,500원 122,500원 -21.2

기아자동차 36,400원 31,200원 -14.2

현대모비스 244,500원 213,000원 -12.8

미국을 필두로 보호무역주의가 짙어지고 사드사태로 중국에서 점유율이 떨어진데다 신흥국의 부진이 겹친 상황에서 현대차그룹 3인방의 실적은 전년에 비해 크게 악화됐습니다. 여기에 최저임금인상을 비롯한 비용증가,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재원까지 확보해야하는 상황에서 엘리엇은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우며 투자를 단행한 것입니다.

장기투자로 유명한 미국의 캐피탈그룹은 실적부진으로 주가가 하락하던 지난해 오히려 낮은 가격에 지분을 추가매입했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기업과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무시한 채 무리한 카드를 들이밀면서 투자손실이 눈덩이처럼 늘어난 책임은 엘리엇의 몫입니다.

7조원에 달하는 배당을 요구하는 엘리엇의 모습은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또 다른 예입니다. 진정으로 건전한 지배구조와 기업의 성장을 원했다면 이번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외환은행을 점거한 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은행의 근간을 빼갔던 론스타의 행태가 다시 반복되어야 할까요?

최진욱산업부장 jwchoi@wowtv.co.kr

한국경제TV 핫뉴스




ⓒ 한국경제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