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그린북' 스틸
/사진=영화 '그린북' 스틸
'그린북'이 사실 왜곡과 성추행 등의 논란에도 2019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해 논란이 일고 있다.

2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됐다. 영화 '그린북'은 이날 '그린 북'은 '보헤미안 랩소디', '블랙팬서', '블랙클랜스맨',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로마', '스타 이즈 본', '바이스' 등의 후보들을 제치고 작품상 트로피를 차지했다.

'그린북'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거친 인생을 살아온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과 교양과 우아함 그 자체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특별한 여행을 담은 영화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기 천재 흑인 음악가와 백인 운전사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주요 줄거리다.

'그린북'은 이날 시상식에서 작품상 뿐 아니라 남우조연상과 각본상까지 차지하며 3관왕에 등극했다.

문제는 '그린북'이 개봉 직후 유족들을 대상으로 사실 왜곡 문제가 제기됐고, 연출자인 피터 패럴리 감독이 영화 촬영장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등 성추행으로 문제가 됐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각본상 시상자인 닉 발레롱가 역시 이슬람 혐오 발언으로 문제가 된 바 있다.

닉 발레롱가는 '그린북'의 주인공인 백인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쓴 셈이다. 그러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인 돈 셜리 유족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버라이어티 등 미국 연예매체 보도에 따르면 돈 셜리 유족들은 '그린북' 제작에 반발했지만, 제작사는 닉 발레롱가의 이야기만 듣고 영화를 제작했다. 유족 측은 "셜리 박사와 발레롱가는 특별히 가깝지도 않았고, 겨우 몇 달 일했던 고용인에 불과하며, 심지어 불성실한 태도로 박사에게 해고당한 인물"이라며 "이 영화에 나오는 박사의 상황과 성격, 에피소드는 모두 거짓"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닉 발레롱가는 "30여 년 전 셜리 박사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와 박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사후에 만들라는 답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유족들이 요구하는 영화화 허락 증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토니 발레롱가 역을 맡았던 비고 모텐슨이 "돈 셜리 유족 측의 일방적인 주장은 불공평하다. 유족들이 돈 셜리 박사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는 증거도 있다. 원한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해 논란이 가중됐다.

닉 발레롱가는 또 2015년 11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뉴저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이슬람 교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9.11 테러에 환호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발언에 동조하는 멘션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된 인물. '그린북' 논란과 더불어 이슬람 혐오 비판이 이어지자 닉 발레롱가는 "차이를 극복하고 공통점을 찾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내 인생을 바쳤다"며 "'그린북'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문을 발표하고, SNS 계정을 삭제했다.

피터 패럴리 감독은 1998년 영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촬영 당시 자신의 성기를 노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카메론 디아즈 등 출연 배우들에게 성기 노출 행동을 했다는 것. 이에 피터 패럴리 감독도 최근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카데미에서 온라인 플랫폼인 '로마'에게 작품상을 주지 않기 위해 문제작인 '그린북'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 가장 큰 화두는 '로마'의 작품상 시상 여부였다. '로마'는 1970년대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일하는 젊은 가사도우미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됐음에도 작품상을 비롯, 10개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감독상 등 3개의 트로피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실제로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한 '블랙클랜스맨'의 스파이크 리 감독은 '그린북'의 작품상 수상에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버라이어티', '데드라인' 등은 "스파이크 리 감독이 작품상으로 '그린북'이 호명되자 자리를 뜨려했다"며 "주변 사람들의 제지로 결국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이날 스파이크 리 감독은 "2월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달"이라며 "이 나라를 만든 사람들, 원주민을 모두 죽인 사람들에게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오는 2020년 대선에서) 도덕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사람과 증오 사이에서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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